26. 추과 삼제(秋果三題)
신석정(辛夕汀)
1. 밤(栗)
명랑(明朗)한 이 가을 고요한 석양(夕陽)에
저 밤나무 숲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니?
숲 속엔 낙엽(落葉)의 구으는 여운(餘韻)이 맑고
툭 툭 여문 밤알이 무심히 떨어지노니
언덕에 밤알이 고이 저 안기듯이,
저 숲에 우리의 조그만 이야기로 간직하여,
때가 먼 항해(航海)를 하여 오는 날 속삭이기 위한
아름다운 과거(過去)를 남기지 않으려니?
2. 감(枾)
하얀 감꽃 꿰미꿰미 꿰던 것은
五月이란 시절이 남기고 간 빛나는 이야기어니,
물밀듯 다가오는 따뜻한 이 가을에
붉은 감빛 유달리 짙어만 지네
오늘은 저 감을 똑 똑 따며 푸른 하늘 밑에서 살고 싶어라.
감은 푸른 하늘 밑에 사는 붉은 열매이어니…
3. 석류(石榴)
후원(後園)에 따뜻한 해볕 굽어보면
장독에 맨드래미 곱게 빛나고,
마을간 집 양지 끝에 고양이 조름 졸 때,
울 밑에 석류 알이 소리 없이 벌어졌네.
투명(透明)한 석류 알은 가을을 장식하는 홍보석(紅寶石)이어니,
누구와 저것을 쪼개어 먹으며 十月상달의 이야기를 남기리?
표준문예독본, 李秉岐,鄭寅承, 白鐵 編, 新丘文化社 刊, 1955. 96~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