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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10 11:04
시인 辛夕汀 현실비판 <참여詩人>이었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464  
시인 辛夕汀 현실비판 『참여 詩人』이었다
-日帝서 維新까지 抵抗의 몸부림
敎員노조 옹호 詩로 拘束되기도
「영구차의 歷史」에서 5․16을, 「꿈의 일부」에서 越南파병 비판-

우리나라의 대표적 순수목가시를 써온 것으로 알려진 辛夕汀 시인(1907~1974)은 실제로 강렬한 현실비판적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온 <참여시인>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나왔다.
夕汀은 24년 첫 작품 <기우는 해>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래 74년 7월 8일 유고시 '뜰을 그리며'가 東亞日報에 소개되기까지 반세기에 걸쳐 詩作생활을 해왔다. 그의 시집은 『촛불』(39년)․ 『슬픈 목가』(47년)․『빙하』(56년) 『산의 序曲』(67년)․『대바람소리』(70년) 등 모두 다섯권이다. 지금까지 夕汀詩에 대한 평가는 초기시에만 편중, 자연과 친화하는 낭만주의적 목가세계로 한정하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대해 최근 許素羅 교수(군산대)는 『辛夕汀 硏究』라는 박사학위논문을 통해 夕汀詩의 진면목을 재조명, 문단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許교수는 “夕汀은 日帝시대, 자유당 시절, 5․16과 유신시절 등 민족의 수난과 역사적 부침을 평생 동안 겪으면서 누구보다도 치열한 현실비판적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그 사실이 아직까지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夕汀은 30년대 식민지치하에서 새로운 순수시의 시범을 보였던 <詩文學派>의 일원.
夕汀이 자연을 소재로 서정시를 써오면서도 현실에 대한 매서운 비판을 늦추지 않은 것은 한국시단의 <순수>와 <참여>라는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의지때문이라고 許교수는 풀이했다.
許교수는 이번 논문에서 夕汀의 시집 미수록 작품과 초판본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夕汀은 초기부터 자연 사물을 빗대 작품을 썼으나 주제의 치열성에 있어서는 申東曄 金洙暎에 못지않은 현실비판의식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日帝가 민족말살정책을 쓰던 40년, 夕汀은 日文이 아닌 우리말로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竹)로>라는 작품을 『文章』誌에 보냈다가 검열에 걸려 원고가 되돌아오자 8․15해방까지 붓을 꺾었다. 이 詩속에는  <조선의 하늘> 등 잃어버린 나라를 상징하는 표현과 <슬픈 노래>, <슬픈 이야기> 등 日帝의 암울성을 상징하는 표현들이 담겨있다. 또한 夕汀이 39년에 쓴 <방(房)>이란 작품은 [세상이 뒤집어졌었다는, 그리고 뒤집어지리라는 이야기는 모두 좁은 房에서 비롯했단다/이마가 몹시 희고 秀麗한 靑年은 큰 뜻을 품고 祖國을 떠난 뒤/아라사도 아니요 印度도 아니요 더구나 祖國은 아닌 어느 모지락스럽게 孤寂한 좁은 방에서 <그 전날 밤>을 새웠으리라]고 시작되는데, 이 詩에 담긴 새 시대를 예언하는 상징성으로 말미암아 그는 日警의 취조를 받아야 했다.
이밖에 夕汀은 피지배 민족의 처지를 극명하게 노출시킨 <어머니 염소가 왜?>를 비롯, <슬픈 構圖>, <밤을 지니고> 등의 詩를 통해 끊임없이 日帝의 사슬을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4․19직후에는 교원노조의 결성을 옹호한 <단식의 노래>를 썼다가 5․16 쿠데타 이후 구속되기도 했다.
[눈물이 피잉 돌았다/햇빛이 너무도 눈부신 5月 어느 날, 南山을 내려오던 내 시야에는 그 숱한 高層建物들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시집에 수록된 <1969년 5월 어느 날>이란 이 시는, 일련의 작품경향 때문에 모 기관에 붙들려가 조사를 받고 나온 후 쓴 작품이다. 이밖에 월남파병을 비판한 <꿈의 일부>, 5․16 쿠데타를 그린 <영구차의 역사> 등도 그의 대표적 현실저항 작품이다.
許교수는 “夕汀의 초기 목가시들은 어두운 日帝를 넘어 오기 위한 하나의 [마스크]에 불과했다. 그의 초기의 시는 개인의 꿈에서 출발했으나 이웃을 위해 詩를 쓰다 삶을 마감했다.”고 강조했다. <高美錫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