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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06 20:22
오하근, ‘목가시인 牧歌詩人’의 일제강점기 日帝强占期 저항시 抵抗詩-신석정론 辛夕汀論,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212  
 
    ‘목가시인 牧歌詩人’의 일제강점기 日帝强占期 저항시 抵抗詩-신석정론 辛夕汀論
  
  흔히 일제에 대한 저항시인으로 한용운, 이상화, 심훈, 이육사, 윤동주 등을 꼽는다. 이들 외에도 카프계열을 포함한 몇몇 시인들이 있지만 시의 미숙성이나 그 후의 변절, 그리고 특히 사회주의적인 사상 때문에 아예 논의에서 제외된다. 항일시인으로 거론되는 이들은 물론 시적 경향이 어느 정도 이런 이름에 값하기도 하지만 시밖의 외적인 요소가 이에 공헌한다. 한용운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의 한 분으로, 이육사는 감옥을 16회나 드나들다가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한 무정부주의 독립운동가로, 윤동주는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한 사상범으로의 경력이 이들을 항일투쟁의 시인으로 부각시키는 데 그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이상화나 심훈은 몇몇 작품에 불과하지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날이 오면] 등의 그 비유적 의미가 명백한, 충격적인 시제나 시어가 전편을 압도하면서 이들을 항일시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들에 비하면 신석정은 각별한 항일투쟁의 경력도 없고, 눈에 꽉 띄는 시제나 시어도 없다. 그러나 그는 하찮은 시골 시인으로 서울의 유명문인들이 지키지 못한 양심과 지조를 지키면서 일제를 견디어냈다. 그는 고향에 칩거하면서 일제 말 부안군청에 근무하던 후배를 충동하여 일본군 정신대 강제동원 공문을 없애게 하여 부안군 위안부 차출을 막았다는 당사자의 증언이 있다. 또 일제 말에 자의건 타의건 거의 모든 작가가 친일 작품을 써서 제국에 헌납해지만 그는 이러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국민문학』의 원고청탁서를 불태워버렸다. 그에게 온 신문과 잡지사의 원고청탁서는 연월일을 꼭 ‘소화’ 몇 년이라고 하고 있는데 그의 모든 원고의 탈고 연월일은 서기로 기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느 잡지사에서 요청한 ‘이력’란의 생년월일은 ‘광무 10년 7월 7일’이라는 우리 연호를 쓰고 있다. 그의 구 호적에는 강제와 불이익에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거의 전 민족이 했던 창씨개명의 흔적이 없다. 그로 인하여 강제 군징집이 발동하자 호구지책으로 다녔던 직장도 버리고 도피생활을 하다 해방을 맞았다. 그러면서 그는 일제에 맞서는 저항시를 끊임없이 발표했다. 이렇게 올곧게 절개를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의 이름은 항일시의 논의에서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그에게는 이미 목가시인이란 레벨이 붙어 다닌다. 그리하여 ‘그의 시풍은 잔잔한 전원적인 정서를 음악적인 리듬에 담아 노래하는 데 특색이 있고 그 맑은 시정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순화시키는 감동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두산 백과사전』) 그의 저항시는 너무나도 강력한 이 목가시인이란 레벨에 가리어 빛을 잃었다. 김억이 처음 언급했고 김기림이 고착시킨 이 칭호는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멍에가 되었다. 김기림은 ‘유토피아를 음모하는 목가시인’, ‘현대문명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라고 이를 긍정평가 했지만, 이후 이는 오히려 현실도피로 오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목가시인이 항일시를 쓸 리가 없다는 선입견으로 그의 시는 ‘전원적인 정서’로만 평가받게 되었다.
   신석정이 일제 강점기시대 출판한 시집은 『촛불』(1939) 한 권이다. 이 시집으로 그는 ‘목가시인’이란 레테르를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34년에 쓴 글에서 오히려 목가 따위의 서정시를 모욕하는 글을 쓰고 있다.
 
   자연과 인생이 분리될 수 없는 지경이란, 동시에 생활과 시를 분리할 수 없는 대조화의 지경을 의미하는 것이오. 이 정요精要한 지경에 하루 바삐 도달하기위하여 우리는 혼란한 생활과 혼란한 예술의 혼선混線을 짓밟고 넘어서서 새벽을 향하여 위대한 출발을 하여야 하겠소.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도 저 묵어빠진 상아탑 안에 있어 미세한 말초신경의 찰나적 발작으로써 앓는 애수를 노래하는 가장 경박한 서정시인들(?)을 어서 바삐 빈 맥주병에서 이주를 시켜야 하겠고, 아울러 어리석은 직업적 문학선수들은 만주국 이민으로라도 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오. (「나의 창작의 태도와 실제」)
 
   이 글은 그가 현실과 유리된 목가의 세계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그 자신의 태도를 자신 있게 오히려 타인에게까지, 그것도 비꼬면서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35년에 발표한 「시론」이란 시에서도 시와 생활의 관계를 논하고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에서 살려는 마음이어니
     시에서 사는 생활을 하는 날엔
     이 붓과 종이에 만가를 부르리라.
     시를 쓰는 것은
     시와 생활이 멀어진 뒤의 일이어니
     시요 생활이요 이를 것이 없는 날엔
     읊어진 옛 노래를 불살라버리리라.
           -「시론」전문 (1935.『중앙』)
 
   여기에서 시와 생활이란 역시 자연과 인생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이는 이상과 현실, 꿈과 이승과 다름이 아니다. 그는 이상세계를 꿈꾸는 낭만주의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낭만주의자의 이름으로 이른바 순수시를 빙자하여 진짜 현실을 도피한 부류와는 180도 다르다. 낭만주의자가 현실을 비판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블레이크 같은 영국의 낭만주의자가 산업혁명의 비인간화를 격렬히 비판했듯이, 영국 낭만주의의 효시인 워즈워스의 「마이클-어떤 목가시」가 목가시의 종말을 고하게 했듯이, 신석정은 일제하의 수탈의 생활에 누구보다도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그는 이상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현실과, 바로 이 현실의 주범인 일제와 싸워야 했다. 그러면서 먼저 『촛불』에서 신석정 목가시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1932)부터 살피자.
   이 작품의 유토피아연하는 ‘그 먼 나라’에는 꽃을 대표하는 모란이나 장미가 피지도 않고, 새를 대표하는 백조나 학이 나는 것도 아니고, 고귀한 짐승을 대표하는 사슴이 뛰어노는 것도 아니고, 인격신을 대표하는 홍안백발의 신선이나 날개 돋친 천사가 사는 것도 아니다. 그곳은 산림과 호수와 들길이 있고, 흰 물새와 야장미(찔레꽃)와 노루새끼가 있고, 비둘기와 흰 염소와 옥수수 밭이 있고, 산국화와 은행나무와 능금 밭이 있고, 꿩소리와 꿀벌소리와 바닷물소리가 있다. 이는 그 때나 지금이나 흔하디흔한 우리의 시골마을 풍경이다. 아마도 이는 신석정의 고향 변산의 풍경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러한 소박한 풍격을 무슨 신비로운 별천지인 양 ‘그 먼 나라’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이러한 평화로운 시골조차도 용납지 않는 일제치하의 ‘지금 이 나라’ 즉 식민지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는 김기림의 언급처럼 또 다른 유토피아를 음모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에 의해 피폐된 어린 시절의 고향을 재건하려고 음모하는 것이다. 『촛불』소재의 「나는 어둠을 껴안는다」(1935),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1934), 「이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1936) 등에는 어둠과 촛불과 새벽이 대칭적으로 등장한다. 촛불은 어둠을 밝힌다. 그러나 촛불은 ‘일회적, 순간적, 유한적, 인위적 개념’(정양, 「신석정의 촛불」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어둠을 인정하여 아예 촛불을 끄고 새벽을 기다린다는 것이 이들 시작품의 논리이다. 어둠을 인정한다는 것은 역사적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직시한다는 것이다. 이를 불평하거나 슬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밤은 자연적 순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이 땅에 밤이 왔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밤이 오면 새벽이 온다는 것도 순리이다. 이러한 자연의 순리를 터득하였기에 그는 일제 말의 혹독한 삶에서도 지조를 지켜냈을 것이다. 이 새벽을 맞을 준비를 착실히 진행해야 한다. 이 시작품들은 이를 일깨워준다.
   그런데도 이 ‘촛불’은 바실라르의 몽상의 촛불로만 인식되어 신석정에게 ‘목가시인’이라는 명칭을 견고하게 했다. 그는 촛불을 켜고 그 먼 나라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끄고 새벽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의 제 2시집 『슬픈 목가』(1947)의 세계를 보자. 『슬픈 목가』는 간행연도와는 달리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제치하에서 발표한 작품들로 짜여있다. 『촛불』이전에 발표된 작품도 더러 있을 정도이다.
  그 ‘슬픈 목가’란 표면적인 의미에 현혹당한 평자들은 이 시집이 그에게 기존의 ‘목가 시인’이란 레벨에 걸맞은 작품으로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이 시집은 그에게 ‘목가시인’이란 레벨을 덧씌우는 역할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겉핥기나 그로 연유된 편견의 오해를 접고 이 시집에서 일제치하에서의 그의 시 정신을 추적하자.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워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요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이드뇨
         -「슬픈 구도」전문(1939, 『조광』)
 
  이 작푸은 『촛불』의 예언자적인진술을 무색케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새벽은 오지 않는다. 이제 절망뿐이다. 문학사가 김사엽은 그의 『국문학사』의 「일제 말 암흑시대의 문학」에서 ‘이 암흑시대 절망을 노래한 시’를 이 작품으로 대신하고 있거니와 이 시대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준 저항시를 이른바 목가시인인 신석정 외에 누가 썼는가 싶다.
  여기에서 신석정이 모진 생활의 슬픔 속에서도 그토록 갈구하고 그토록 아름답게 그렸던 자연은 이제 그 기능을 상실한다.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이 있다면, 더구나 거기에 ‘밤과 무수한 별’들이 보태진다면, 이른바 목가시인의 시세계에서 이루고자 시도했다는 유토피아의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다. 그런데도 ‘꽃 한 송이 피워낼 지구도’, ‘새 한 마리 울어 줄 지구도’,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는 아이러니, 이 풍요 속의 빈곤은 그 풍경의 처절함을 배가시킨다.
   ‘하늘’과 ‘푸른 산’은 이제 의식이 없는 한 개 물체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냥 거기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지구는 생산성도, 감수성도, 삶의 공간도 없는, 그래서 의미 없는 존재물에 불과하다. ‘밤’ 역시 악의조차 없이 그냥 존재한다. 밀리면 써는 것이 순환인데 밤은 다만 밀리고 흐를 뿐이다. 악의가 있으면 도전이라도 하련만 그 악의가 고착되어 그 악의 자체도 잊어버린 밤이다. 별도 예외는 아니다. 밤이니까 그냥 하늘에 걸쳐 있을 뿐이다. 별은 원래 희망의 상징이었다. 여태까지는 고통 속에서도 별을 그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별도 이미 절망의 상징으로 변했다.
  ‘밤’은 새벽의 전단계인데 그 밤조차 무의미한 참담한 일제치하의 현실 그것은 절망뿐이다. 이 밤은 언제나 셀 것인가. ‘일제가 망할 때가 되었는데 왜 망하지 않는가?’ 하는 절망을 그는 이렇게 절실하게 통곡했다. 이 ‘밤’은 일제치하의 조국의 실상이다.
 
    지도에서는 푸른 것을 바다라 하였고
    얼룩덜룩한 것을 육지라 부르는
    습관을 길러 왔단다
 
     이제까지 국경이 있어 본 일이 없다는
    저 하늘을 닮아서 바다는 한결로 푸르고
    육지가 석류 껍질처럼 울긋불긋한 것은
    오로지 색채를 즐긴다는 단조한 이유가 아니란다
 
     오늘 펴보는 이 지도에
     조선과 인도가 왜 이리 많으냐?
 
     시방 나는
     똥그란 지구가 유성처럼 화려하게 떨어져 갈 날을
     생각하는 ‘외로움’이 있다
 
     도시 지구는 한 덩이 푸른 석류였거니…
 
             -「지구」전문 (1939. 『시건설』)
 
   이 지도는 육고나 수심을 표시한 자연의 지도가 아니라 국가별 분할을 표시한 인위의 지도이다. 그래서 국경이 없는 ‘바다는 한결로 푸르고’ 국가를 빛깔로 표시한 육지는 ‘얼룩덜룩’하고 ‘울긋불긋’하다. 우리는 이러한 비자연적이고 부장연한 지도를 당연지사로 여기는 습관을 길러왔다. 그러나 화자는 이를 거부한다. ‘이제까지 국경이 있어 본 일이 없다는’ 하늘을 닮은 바다처럼 다색의 육지의 지도를 원한다. 그러나 지도는 석류껍질처럼 찢어져 울긋불긋하다. 그래도 좋다. 그 인위의 지도일망정 제대로 갈라질 곳이 갈라지지 않아 제 빛깔을 칠하지 못하고 남의 빛깔로 대신한 더욱 부자연한 것이 1930년대의 세계지도이다. 그 시대 지도는 조선과 인도와 같은, 서구 제국주의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화자는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큰 ‘외로움’이 있다. 이 외로움은 예사스런 고독감이 아니라 어떤 결단의 외로움이다. 지구가 원래대로 푸른 석류같이 곱게 존재하지 못하고 늙어서 갈라지고 쪼개질 바에야, 그보다도 이를 억지로 잇고 붙이는 침략과 약탈의 역사가 지속될 바에야, 노아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화재로서도 치유될 수 없을 바에야 지구는 별똥별처럼 떨어져 깡그리 없어져야  한다. 그 광경은 처참함을 넘어선 화려함이요, 무서움을 넘어선 외로움이다.
   이 천지개벽은 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재창조가 수반되어야 한다. 신석정은 그런 재창조의 의지를 「먼 날이 지나면-어느 장편 시극의 서곡으로」에 담아 미래의 유토피아 건설의 역정을 그리기도 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어떤 잡지의 설문에서 ‘구상하고 있는 장편 서사시의 완성’을 말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런 천지개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언급하고 있는 듯 싶다. 이 지도는 온통 악의 축인 제국주의가 땅따먹기로 금 그어놓은 당시 세계의 실상이다.
  그러나 이런 천지개벽은 실은 ‘이 몹쓸 지구’에서의 지각변동에 의한 혁명의 수행이다. 이를 위한 음모가 있다.
 
       세상이 뒤집어졌었다는, 그리고 뒤집어지리라는 이야기는 모두 좁은 방에서 비롯했단다
       이마가 몹시 희고 수려한 청년은 큰 뜻을 품고 조국을 떠난 뒤
       아라사도 아니오 인도도 아니오 더구나 조국은 아닌 어느 모지락스립게
      고적한 좁은 방에서 「그 전날 밤」을 새웠을 것이다
      그  뒤
      세월은 무수한 검은밤을 데불고
      무수한 방을 지나갔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밤
      새로운 세대가 오리라는
      새로운 세대가 오리라는
      그 막막한 이야기는 바다같이 터져나올 듯한 울분을 짓씹는 젊은 「인사로푸」들이
      껴안은 질화로 갓에서 동백꽃보다 붉게 피었다
 
      천년이 지나갔다
      좁은 방에서……
      만년이 지나갔다
      좁은 방에서……
              - 「방 房」전문(1939. 『학우구락부』)
 
 
  ‘세상이 뒤집어졌다.’는 지각변동이다. 아마 이는 러시아혁명을 의미할 것이다. 러시아는 1917년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10월 혁명(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이르러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아 마침내 소비에트공화국을 수립하여 혁명을 수출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세계를 양분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공산주의운동도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이를 왜곡시킨 것은 민족의 비극이었다. ‘세상이 뒤집어지리라.’는 기대는 물론 조국의 독립에 대한 바람일 것이다. 이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실제 행동을 모의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하여 조국을 떠나간 이에 대한 염려도 이 방에서 이루어졌다. 『그 전날 밤』인사로프도, 인사로프의 모델이 된 까뜨라노프도, 그리고 일제 때 우리의 독립운동가들도 투쟁을 위하여, 혹은 투쟁력을 축적하기위하여 조국을 떠났다. 이 작품에서도 ‘아라사도 아니요 인도도 아니요 더구나 조국은 아닌 어느 모지락스러운 방’이라 하고 있다. 그러면 아마도 만주를 포함한 중국의 어느 곳일 것이다. 화자는 그가 독립군의 일원으로 조국으로의 진군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 전날 밤』은 변혁의 전날 밤, 불가리아의 독립운동 전개의 나날이다. 이소설의 에필로그 같은 결말은 “전 그때 ‘러시아에는 참된 사람이 나와야 된다.'고 했지요. 그런데 대답은 ‘암 나오고 말고.’였지요.”라는 불가리아가 아닌 러시아혁명의 열망이었다. 러시아에 ‘새로운 세대가 오리라는 ’예언이다. 투르게네프가 이 소설을 발표한 때는 1860년이지만, 러시아 혁명이 완성된 것은 1917년 11월이고, 불가리아가 터키로부터의 독립국가가 된 것은 1908년, 그리고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 것은 1946년이다. 그만큼 독립의 길은 험난했다. 그렇게 ‘그 전날 밤’은 하루로 끝나지 않고 ‘그 뒤 세월은 무수한 검은 밤을 데불고 무수한 방을 지나갔다.’
  이 시작품에서 ‘방’은 자유와 속박, 희망과 절망, 고요와 열기의 양면가치를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방은 좁지만 자유로운 공간이다. 이곳은 소문의 전달지이고 음모의 진원지이다. 그러므로 젊은이의 울분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소문이나 음모가 밖으로 새나가서는 안 되는 폐쇄와 속박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는 심하게는 감옥일 수도 있다. ‘어느 모지락스럽게 고적한 방’은 독립투쟁 중에 구속된 이국의 어느 독방일 수도 있다. 그곳은 ‘무수한 검은 밤’을 견디는 희망의 장이요, 그 밤에 지친 절망의 장이기도 하다. 그곳은 ‘무수한 검은 밤을 데불고’ 세월이 지나가도 무기력하게 웅크려 있는 고요의 방이기도 하고 ‘젊은 인사로푸들이 껴안은 질화로’같이 열기를 품은 방이기도 하다. 그 좁은 방은 폭발하여 넓은 ‘바다’로 변할 수 있다. 이것이 혁명이고 독립이다. 그 울울창창한 분노는 거침없는 바닷물결같이 범람할 것이다. ‘질화로’의 불씨는 활활 타올라 온천지를 ‘동백꽃보다 붉게’물들일 것이다.
  마지막 연의 천 년이 지나고 만 년이 지나갔다는 표현은 극한상황의 진폭을 확대하기위한 기법이다. 일각이 여삼추 一刻如三秋이다. 이는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의식적인 시간이다. 신석정의 시에는 이 ‘천년만년’이 많이 나온다. 이는 의지력의 표출이면서 ‘천년만년 살고지고’ 같은 우리의 언어습관이다. 이는 결코 조국 광복의 날이 아득하다는 표현이 아니다.
이 날을 위하여 이 ‘방’에서 음모를 꾸미는 인사로프들이 있고 또 이미 방을 벗어나 음모를 수행하는 ‘이마가 몹시 희고 수려한 청년’이 있다.
 
   소년을 위한 목가
 
     소년아
     인제 너는 백마를 타도 좋다
     백마를 타고 그 황막한 우리 목장을 내달려도 좋다
 
     한때
     우리 양들을 노리던 승냥이떼도 가고
     시방 우리 목장과 산과 하늘은
     태고보다 곱고 조용하고나
 
     소년아
     너는 백마를 타고
     나는 구름같이 흰 양떼를 데불고
     이 언덕길에 서서 웃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웃으며
     황막한 그 우리 목장을 찾어
     다시오는 봄을 기다리자
           -「소년 少年을 위 爲한 목가 牧歌 전문 (1941. 『신세기』)
 
  ‘태고보다 곱고 조용’한 세계는 또 다른 태고의 세계이다. 광복은 단순한 독립이 아니다. 카오스에서 코스모스의 전환, 그것은 천지의 재창조이다. 그래서 이 세계의 목자로서 순진무구의 표상인 소년이 등장한다. 구세대는 모조리 물러가야 한다. 화자 역시 소년의 보조인에 불과하다. 말은 충성과 헌신의 상징이다. 흰색은 색이면서 색이 아니므로 순수하고, 모든 색의 근원이므로 모색의 순결을 유지하고, 그 안에서 무궁한 변화를 초래하므로 신비하다. 이 흰빛이 백마와 양 떼를 하나로 연결한다. 통치의 주체인 백마는 그 객체인 양 떼와 속성을 같이한다. 이 순수는 소년과도 같은 속성이다.
  예부터 목민牧民이라 하여 백성을 양에 비유하는 것은 “아마도 양이 어리석고 애정에 빠지기 쉽고 무리짓는 것을 좋아하고 놀라서 우르르 잘 달아나고 하므로 그들이 만드는 사회는 인간사회와 비슷하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 같다.”(프라이, 『비평의 해부』) 그래서 예수도 목자로 자칭했고 정약용도 『목민심서』를 썼다.
  그러나 새로 도래한 세계는 다시 승양이 떼를 불러들일 정도로 어리석은 목자도, 어리석은 양 떼도, 어리석은 말도 없다. 지도자도 백성도 하나가 되고 관리는 충성과 헌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준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목장은 황막하고 봄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봄은 꼭 온다. 그러한 조국의 봄을 기다리면서 신석정은 미래의 조국을 설계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꽃덤풀」)
  이 작품 후로 신석정은 너덧 편의 작품을 발표하는 둥 마는 둥 일제를 끝마쳤다. 그는 일제가 『국민문학』을 통하여 강요하는 일문으로 된 일제 찬양시를 외면하고 아예 붓을 꺾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일제에 대한 그의 마지막 선전포고였던 셈이다.
  이상으로 신석정의 생활을 짓누르는 일제하의 어둠의 현상과 그의 극복, 그리고 그 후에 닥칠 미래의 조국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는 항상 붙어 다니는 목가시인이란 레벨에 대해 ‘다만 일제에 저항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뿐 그렇게 불리어지는 것을 탐탁하게 여긴 바도 없거니와 그렇게 불쾌하게 여긴 적도 없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를 당연시하고 ‘한국 최고의 목가시인’에 자부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일제에 저항하지 못한 것을 자책한다.
  그러나 일제치하에 쓴 시작품 중 『촛불』과 『슬픈 목가』의 몇 편을 제외하고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정통 목가에 해당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목가적인 풍경조차도 어린이의 입을 통하여 말하거나, 그림이나 과거이거나 자연적인 밤의 아름다움이다. 어른의 현실인 오늘 대낮의 풍경이 아니다. 이들을 목가시라 해도 좋다. 그러나 이들 시집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오늘 대낮의 젊은이가 맞닥뜨린 현실의 노래가 일제에 대한 저항시이다. 일제 말에 이 정도의 저항시를 쓴 시인이 누가 있었는가 묻고 싶다. 다만 저항을 슬픈 몸짓 속에 감추었을 뿐, 시이기에 직설적인 언급을 피했을 뿐, 그 이상의 울분, 그 이상의 신념, 그 이상의 예언이 어디 있는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후의 20년대 후기에서 30년대 초까지의 카프시를 제외하면 누가 이보다 격렬한 저항시를 썼던가. 그는 혹시 이념에 입각해서 카프시인이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더욱 강하게 저항시를 쓰지 않은 점에서 부끄러움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겸손이다. 일제하에서 쓴 그의 시작품은, 시라기에는 성숙하지 못한 카프시보다 훨씬 더 일제에 대한 저항을 수행하고 있다. 그의 항일적인 저항시는 오히려 카프시인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문인들이 변절하여 친일작품을 썼던 일제 말에 더욱 격렬해졌다.
  그의 이러한 시정신은 조국 분단의 비극과 자유당과 군사 독재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면면이 이어졌다. 이렇게 시종일관 빈곤과 고통 속에서도 끝끝내 훼절하지 않고 끝끝내 지조를 지키다 간 시인이 누구인가. 분명 우리의 일제치하의 문학사는 다시 씌어져야 한다. -오하근(원광대학교 명예교수), 『전북현대문학 상』 문학사·작가론, 신아출판사, 2010, pp. 138~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