梅窓集 序
-梅窓詩 對譯을 하면서-
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離別한 님
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지
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더라.
梨花雨 하면 梅窓이 생각하고, 梅窓 하면 벌써 우리 가슴에 선뜻 오는 게 바로 “梨花雨”의 時調다.
唐나라에 女流詩人을 찾는다면 저 薛濤를 손꼽을 것이오, 이 나라에 女流詩人을 찾는다면, 아모래도 黃眞伊와 더불어 梅窓을 아니 들 수 없을 것이다.
梅窓은 天生의 抒情詩人이다. “梨花雨”는 언제 외어도 가슴에 절절히 울리는 것은 이렇게도 가슴 아프게 離別을 읊은 珠玉이 없는 탓이리라.
三百九十年前, 까마득한 옛날, 이곳 全州서 西北으로 百里를 距離한 扶安에서, 그 當時 縣吏 李陽從의 딸로 梅窓은 태어났으니, 그것이 바로 宣祖六年 癸酉(西紀一五六七)이었고, 三十八歲를 一期로 不遇한 一生을 마친 것이 光海二年 庚戌이었다.
梅窓은 一名 桂生, 또는 香今이라 하였고, 字를 天香이라 하였으며, 梅窓은 그의 號다. 노래를 잘 부르는 梅窓, 거문고를 잘 타는 梅窓, 時調를 잘 짓는 梅窓은, 그 當時 漢詩를 잘 짓는 梅窓으로 또한 拔群의 存在였다.
그러기에 가장 操身했다는 村隱 柳希慶 같은 詩人도 梅窓으로 하여금 破戒를 하였고, 仁祖反正을 꾀한 延平府院君 李黙齋 또한 情을 求하였으며, 許多한 詩人 豪客이 梅窓과 더불어 觴詠唱和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扶安邑 五里峴 鳳頭메 西 쪽 언덕을 찾아가면 그의 무덤이 있고, 그 앞에는 “名媛 李梅窓之墓”라는 石碑가 서있다. 當時 이 碑는 그의 歿後 四十六年만에 세웠던 것인데, 反以上이 地下에 묻히고 字劃이 剝落되어 丁巳春에 扶安老休齋 發論으로 石工을 불러 故人을 慰魂하는 管絃속에서 隣郡人士들로부터 온 和詩를 朗讀하고, 六百餘人의 參會로써 盛大한 除幕式이 擧行되었다고 傳해온다.
梅窓이 떠난 지 三百五十餘年이 지낸 오늘에, 故鄕을 같이한 나의 손으로 對譯을 하게 되는 것은 이 또한 무슨 因緣일까? 原詩에 상채기를 내는 것만 같아 地下에 계신 梅窓에게 저으기 송구하기 짝이 없다.
끝으로 서투른 對譯에 過分한 힘을 보태주신 舍伯 胡民 님과 材料를 求해준 崔勝範君에게 깊이 謝意를 表한다.
본시 梅窓集은 扶安 開岩寺에서 錄板하였으나 불살라 散逸되고, 지금 전해오는 것은 겨우 幾十首에 不過하니 分類하면 다음과 같다.
記
五言絶句 二十一首 七言絶句 二十五首
五言律詩 三首 七言律詩 五首
都合 五十四首
參考書
一. 梅窓集 若川先生寫本
二. 梅窓集 가람 藏本
比斯伐草舍에서
辛夕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