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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18 15:26
김목랑 시집 휜나비 서문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979  
흰나비 시인 목랑木浪에게
- 김목랑 시집 '흰나비' (1946. 김목랑 시집 간행회)
 
목랑, 그대가 나의 작은 초막 청구원靑丘園의 문을 두드리기는 지금부터 7년 전 일인가 기억합니다. 그것은 1939년 남조선 일대를 위협하던 흉년으로 말미암아 그 이듬해 소위 한해구제 토목공사에 그대가 노가다의 어시둥이가 되어 우리 고을을 맡아오던 해이었으니…
노가다로는 너무 어울리지 아니하는 그 가냘픈 체구에 각반을 질끈 동이고 하루 7· 80리나 되는 공사판을 자전거로 쏘다니는 그대가 나 보기에는 확실히 서글픈 생활의 수난자이었습니다.
그 숨 막히는 세월에 그대와 더불어 밤을 새워가며 시를 논하고 세사를 논하다가 끝내는 술까지 마셔가면서 해결지을 수 없는 영원한 숙제를 가슴에 지닌 채 그대로 자리에 쓰러지던 때도 있었고 혹은 그대로 어색하게 헤어지는 때도 있었던 것을 그대도 역력히 회상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때 그대를 몹시 괴롭히던 것은 그 공사판도 생활도 아니었고 오직 그대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던 그대의 시심이었으니 나를 만난 이후 그대의 시를 사모하는 병은 불치에 가까운 고질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대는 끝내 시를 병처럼 지니고 다니는 불행한 노가다가 되고 말았으니 어찌 불행한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목랑, 그때 그대가 남긴 시편들 중에서「한 개의 촉루髑髏」를 보고 나는 놀랐습니다. 그것이 지나치게 꽉 째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라면, 시방은 그대에게 새삼스럽게 놀라지는 않았으리다.
그때 나는 깊이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니 부절不絶한 전진이 있기 전에 그대가 손수 창조하고 있는 한 개 작은 세계에 안주하려는 가장 위험한 그대의 자세를 보았던 까닭이었습니다.
대리석같이 차고 수정처럼 맑은 그대의 시에서 처음 괭이를 메고 나간 여백이 풍요한 처녀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황막하고 거센 기풍을 찾던 나의 원망은 그때의 험난한 천후天候에 한낱 부질없는 짓이었음을 나 스스로 슬퍼하지 않는 바도 아니었습니다.
그 뒤 연달아 나오는 그대의 작품은 역시 한층 더 차고 맑게 깎고 다듬어 그대의 노숙老熟하게 결정된 수법에서 느끼는 경이보다 실망이 컸으니 그것은 시인의 생명이 영원한 청춘에 있다는 것을 굳이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물에 쓸려간 빈 터전의 돌각담을 무심코 넘어가는 흰나비의 적멸寂滅에 그대의 노래가 설마 끝나서야 쓰겠습니까?
인민의 나라를 세워야 할 오늘날 이를 세우기 위하여 몸뚱어리째 받쳐야 할 오늘날, 그대는 다시 꽃씨를 뿌리되 빙하氷河 속까지 환하게 피어 비치기를 원하거늘, 한물에 쓸려간 빈 터전에 새마을 세우고 다시 복사꽃 피는 날 무너진 돌각담을 넘어가던 흰나비는 다시 되날라와 선회하리라 믿습니다.
인민의 머리 위에서 인민의 어깨 위에서……
1946년 6월 2일 밤
빗소리 들으며 청구원 초막에서 신석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