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1973년 4월 전북대학신문에 게재한 글입니다.
전라풍류기
예부터 멋의 고장으로 일컬어 오는 호남의 풍류를 더듬기 전에 먼저 그 멋을 빚어 낸 기후 풍토를 살펴보기로 하자.
삼천리강토가 어디라 없이 깡그리 금수강산인데 어디를 꼬집어 산자수명한 고장이라 이르리오마는 그래도 북녘의 험준한 태백산맥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이 남녘의 기후 풍토다. 남녘에서도 험준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으로 가로막은 경상도나 차령산맥을 안고 있는 충청도보다는 노령산맥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전라도가 한결 아늑하고 온난한 고장이리라. 충청도 동녘에서 비롯한 소백산맥이 추풍령에서 나눠진 노령산맥은 줄곧 서남을 향하고 줄달음치면서 무주에 덕유산, 장수에 백운산, 구례에 지리산과 진안에 마이산, 전주를 지나며 고덕, 모악과 내장內藏의 기승을 일으켜 놓고 서해의 변두리를 변산으로 갈라놓은 산줄기는 다시 남녘으로 뛰어 광주에 무등, 영암에 월출을 우뚝 세워 놓고 무안반도를 쓰다듬으면서 슬그머니 다도해의 잔잔한 물결 속으로 꼬리를 사려든다.
이 오밀조밀한 산줄기는 제각기 강물을 동반하고 골을 돌아 들을 건너가기 마련이니 전주 화산에서 겨우 잔을 띄우던 만경강과 정읍 내장에서 실개천으로 흘러내리던 동진강은 우리나라 곡창지대로 이름난 금만평야를 젖줄처럼 누비며 서해로 들어가니, 어느 시인은 “들이 바다도곤 넓어 눈이 모자라 못 보겠다”고 재탄 삼탄한 적이 있다.
한편 장수 팔공산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춘향이로 이름난 남원의 요천을 끼고 곡성을 지나 보성강과 합류하여 지리산을 남으로 돌아 서해를 멀리 두고 경상도 광양만으로 빠진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고려가 후백제 견훤을 평정하게 되자 백제인을 미워한 나머지 차령 이남의 물이 모두 배주背走한다 하여, 차령 이남 사람은 등용하지 말라고 분부를 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 오대강의 하나인 영산강은 담양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남으로 흘러 황룡강과 만나 나주 함평 무안의 비옥한 평야를 둘러 다도해로 들어간다. 이 강의 발원지인 담양은 죽세공으로 이름이 났을 뿐 아니라 선조 중종 때의 석학이요, 저 유명한 면앙정가 와 시조로써 우리 시가사상에 강호가도를 수립한 송순宋純이 제월봉 아래 석림정사에 묻혀 독서와 가곡으로 유유자적하던 고장으로 또한 이름난 고을이다. 풍광이 명미하고 토지가 비옥한 이 풍토에 언제부터 우리 조상들이 터를 닦고 자리를 잡았는지 그것은 까마득한 옛이야기로 알 길이 없으나 삼한시대의 마한의 왕국에 속하는 곳으로 그것은 기원 전 3세기 중엽의 일이니 그 뒤 여러 번의 북새를 겪은 다음 고구려와 더불어 부여족의 한 갈래로서 주몽 동명성왕의 아들 온조가 거느린 유이민流移民이 남하하여 기원전 1 8년 전에 건국한 것이 바로 지금의 전라도 땅으로 당시의 백제인 것이다.
택리지를 들춰 보면 이곳의 풍속이 노래와 여색女色을 즐기고 부귀와 사치를 숭상하여 사람들이 영리하나 경박하여 학문을 경시하는 까닭에 과거에 현달하는 사람이 적었다고 전하고 있다. 역시 멋의 고장 호남은 그때부터 비롯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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