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1.
P군
내 자신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인데 새삼 군에게 이런 붓을 든다는 것이 어찌 생각하면 쑥스럽기도 하지만 이것은 군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인 동시에 내 자신에게 들리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자성하는 의미에서 이 붓을 든다고 전제해 둡니다.
시-문학-에 종사한다는 것은 바로 인생을 보다 충실하게 살자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평생의 지론입니다. 그러므로 문학을 한다는 자체가 바로 인간 수업의 길로 통하리라 믿습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제나라 경공이 정치의 요체를 공자에게 물었을 때 「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고 대답한 것은 비단 정치에만 통하는 말이 아니라 문학에도 통하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하듯이 시인은 시인다워야 하리라 믿습니다. 답지 못한 데서 문제는 복잡하게 전개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문학에 임하는 문학도의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므로 문학 이전에 인간수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면 나의 지나친 과언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인간 수업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자기 문학에 뚜렷한 신념을 가지지 못하고 신념을 잃기 때문에 인간의 지주로 삼아야 할 지조를 헌 신짝 버리듯 팽개치는 예를 슬프게도 우리의 짧은 문학사에서도 역력히 보아 온 사실이 아닙니까?
P군.
괴테는 사대 시성의 한 사람이요 세계의 문호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말할 사람은 없을 만치 그가 우리 정신사에 남긴 위대한 업적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이마르에 진공해 온 나폴레옹에게 달려가 송시를 봉정한 것을 우리들은 까마득히 망각하고 있습니다.
일개 정복 왕의 마제하馬蹄下에 송시를 써 바쳐야 하겠습니까? 사대 시성이 못되어도 좋습니다. 파우스트 같은 걸작을 못 써도 좋습니다. 원수의 말발굽 아래 송시를 써 올리는 망발을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백마를 타고 달려오는 나폴레옹의 웅자에 감탄한 헤겔 또한 그의 서제의 베란다에서 ‘세계의 정신’이라고 환호를 올렸다니 이 철학자 또한 괴테 못지 않은 주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설령 공화주의에 의한 세계 단일화를 염원했다손 치더라도 일인 전제의 상징인 왕관을 쓴 이상 그것은 공화주의의 이념인 민중의 자유 평등에 배치되는 자기기만이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때 봉정하려던 악보를 찢어버린 베토오벤과 아울러 나폴레옹의 족벌정치에 일어섰던 철인 피히테와 지사 슈타인을 내가 존경하는 까닭이 어디 있는가를 P군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기에 T.S. 엘리엇의 유명한 "황무지"가 그의 손을 거쳐서 비로소 햇빛을 보았다는 그 손의 주인공인 에즈라 파운드를 위대한 시인이라고 입을 모아 떠들어 대는 것을 볼 때 제2차 대전 때에는 다눈치오와 더불어 무솔리니의 앞잡이로 조국의 적대국의 편에서 조국을 패망의 구렁으로 몰아넣는 데 부채질한 반역을 저질렀다는 것을 그의 작품의 예술적 가치로 상쇄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나는 곰곰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기에 말입니다.
P군.
괴테만 못해도 좋습니다. 에즈라 파운드만 못해도 좋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시인 한용운을 존경하고 내 가슴에 지니는 것입니다. 너무나 일찍 떠난 지훈을 아끼는 까닭도 여기 있습니다. 이들의 높은 지조는 우리 문학사의 영원한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으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볕의 첫걸음이여.
님이여 당신은 의義가 무겁고 황금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님이여 사랑이여 옛 오동의 숨은 소리여.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과 평화를 좋아하십니다.
약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의 보살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 바다에 봄바람이여.
「찬송」
만해의 조국애가 이처럼 넘치는 「찬송」 같은 시가 있는 나라에 태어나 시인이 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젊은 시인 송욱은 말하고 있습니다. 나 또한 만해 같은 시인이 태어난 나라에 생을 받은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P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표면에는 우리보다 불행한 민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마는 돌이켜보면 우리만치 불행한 민족도 드물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그 불행한 민족의 대열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는 것을 어찌합니까.
해방 4반세기 넘도록 나라는 두 동강으로 갈라진 채 반목질시 속에서 좀체 통일의 길은 엿보이지 않고 겨우 남북대화가 시작되는가 했더니 그 또한 중단된 채 앞길은 까마득한 벽에 부딪치고 있으니 어찌 생각하면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불행 속에서 시-문학-에 종사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실을 범람하는 불신과 부조리에 겹쳐 빈곤 속에서 남의 턱을 바라보며 겨우 겨우 살림을 꾸려가야 하니 이런 북새 속에서 시-문학-에 종사하는 것이 고행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불신과 부조리와 빈곤 속에서 인간의 정신세계를 침식하고 덤비는 불의와 부정을 모른 채 수수방관하고 앉아 고고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들을 몰아내는 데 정치와 경제의 힘도 크지만 문학 또한 그 일익을 맡아야 하리라 믿습니다.
일찍이 사르트르는 ‘작가는 굶주리고 있는 20억 인간 편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우리 문학도는 먼저 불행한 우리 겨레의 편에서 붓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한 편의 시는 불행한 겨레의 멍든 마음을 되찾아 주는 따뜻한 손길이 되어줘야 하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데까지 시인은 찾아가야 할 인고와 용기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조리한 현실에 눈감고 현실을 외면하는 것만을 능사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부조리와 현실에 대한 인간의 성실한 저항이 누구에게보다도 시인에게 요구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P군
군은 요산樂山의 「모래톱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나리라 믿습니다. “그들이 살아 오던 낙동강 하류의 어떤 외진 모래톱- 이들에 관한 그 기막힌 사연들조차, 마치 지나가는 남의 땅 이야기나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세상에서 버려져 있는데 대해서까지는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고 그 서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남들은 보릿고개를 못 넘겨서 솔가지에 모가지를 매다는 판인데 낙동강물이 파라니 푸르니 어쩌니…” 하고 시인들은 잠꼬대를 하고 있으니 이게 어디 될 말이냐고 사뭇 노한 눈망울로 흘겨보는 요산을 생각할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습니다.
공장의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거나 말거나 나라 일이 잘 되거나 말거나 오불관언으로 역사와 현실을 외면하고 입버릇처럼 주문 외우듯 순수를 앞세우고 예술의 영원성을 찾아 현실을 추하다는 듯이 혼자만 속세를 털고 자위의 독방에서 칩거하면서 고독과 절망과 허무를 배설하는 것을 유일한 순수문학인 것처럼 나르시소스적 대화를 일삼으며 살아가는 것을 오늘날 시인의 예의로 삼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P군.
현실과 시대의 거창한 체구와 준엄한 광망을 까마득히 외면하면서 민중이라는 넓은 바다에 뛰어들기를 두려워하고 겨레라는 높은 산악에 오르기를 두려워해야 되겠습니까? 몰리에르의 계몽적 휴머니즘이나 사르트르의 실존적 휴머니즘이 모두 현실참여의 소산인 것을 잊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잊어버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 참여를 마치 사갈시蛇蝎視하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부대들은 과연 이 나라 시 문학을 어디로 이끌고 가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페니시즘과 허무의 거미줄에 걸려서 나비처럼 언제까지나 퍼덕이고 있어야만 할 것인지……. 이야길 하다 보니 두서없는 난필이 길어졌습니다. 오직 건강한 정진을 거듭 빌고, 군의 산 같은 건강을 빌면서….
2.
R군.
오랜만에 나는 이 붓을 들었다. 그대는 평소에 시에 대해서 남달리 항상 의심을 품고 있을 뿐 아니라 시를 쓸수록 어려워진다는 그대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오늘 밤에는 이 밤을 새워가면서라도 그대가 품고 있는 시에 대한 의심을 내가 생각하는 세계에서 풀어 본다느니보다 이야기하고 싶다.
추야장이라면 기나긴 가을밤을 두고 이르는 말인데 이 기나긴 밤을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그대를 위하여 시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어느 시인이 문학 강연에 나아가서 한 시간 남짓 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 강연을 다 듣고 난 뒤에 청중의 한 사람이 ‘시는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 질문이 어찌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는 것 같지만 이 질문을 그대로 우습다고만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하고 절실한 질문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 ! 과연 그렇다 ! 일생을 바치고도 오히려 모자라는 학문의 길- 더구나 그것이 예술의 길인 것을 어찌 한 시간의 강의로 감히 그 진의를 체득할 수 있을 것인가?
2+2=4는 어디나 통하는 길이요 누구나 알 수 있는 길이지만 예술의 길은 2+2=4의 세계가 아닌 것을 어찌하랴 !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대하여 한 시간을 소비했다면 아마 그 청중 가운데서 ‘라디오는 무엇입니까?’ 하는 엉뚱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왜?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제조되는 과학의 세계지만 시는 제조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예술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창조란 더 말할 것도 없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어찌 과학의 세계와 예술의 세계를 대비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R군,
뽕나무 잎에는 흰자질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뽕잎을 먹고 자라나는 누에의 체내에도 흰자질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뽕잎을 먹고 만들어내는 누에고치는 전부 흰자질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뽕잎을 먹고 만들어내는 누에고치는 전부 흰자질로 돼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은 실로 라디오나 텔레비전처럼 과학으로 따질 수 없는 신비한 현상이 아닌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좋은 실례가 아닐 수 없다. 시 또한 누에의 경우와 다름이 없는 것이니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인생이건 자연이건- 잘 소화해서 비로소 그것을 표상하는 작업인 것이다.
R군 !
일찍이 C.D.루이스는 「한 편의 시는 어떻게 엮어지나?」 - 시의 푸로세스를 다음과 같이 세 개의 단계로 말하였다.
①한 편의 시의 종자, 혹은 싹이라고 할 만한 것이 시인의 상상력을 세 차게 칩니다. 그것은 뭣인가 대단히 강한 그러나 막연한 감정, 어떤 특정의 경험 혹은 하나의 관념의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때로는 그것은 우선 먼저 하나의 이미지로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나아가서는 거의 벌써 말의 옷을 걸친 시구의 형태로 혹은 꼭 한 줄의 운문의 형태로 나타나는 수조차 있습니다. 시인은 그 관념이거나 이미지거나를 그의 노오트 북에 적어둡니다. 또는 머리 속에 잠깐 집어넣어 둡니다. 그리고 나서 시인은 그런 일은 잊어버리고 맙니다.
② 그러나 시의 종자는 시인의 체내에 이른바 무자각적 의식이라고 불리우는 그의 부분 속에 넌지시 들어갑니다. 이리하여 그 종자가 점점 성장하게 되고 차차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그때 하등 그 종자와는 관계없는 많은 딴 시적 종자가 함께 성장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시인은 자기 몸의 내부에서 몇 편의 시이든 동시에 성장하여도 조금도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비로소 한 편의 시가 탄생하는 그 순간이 찾아옵니다. 한 편의 시가 나오기 위해서는 이 제2의 준비는 며칠씩이나 걸리는 수도 있고 몇 해가 걸리는 일까지도 있습니다.
③ 시인은 하나의 시를 쓰고 싶다는 무서운 욕망을 느낍니다. 그 욕망은 단순히 욕망이라기보다는 마치 육체에까지 스며드는 것 같은 실감인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자신에 대하여 말하면 나는 이 욕망을 나의 위장 속에 느낍니다. 그 느낌은 뭐랬으면 좋을까요. 배가 고플 때에 위장에 느끼는 느낌과 그 무엇인가가 내 몸을 내려덮으려 할 찰나에 말할 수 없이 흐뭇하거나 겁내는 때의 느낌과 서로 뒤섞인 그런 느낌입니다. 그때가 바로 시가 탄생하려고 하는 찰나입니다. 시인은 숨을 죽이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혹은 한 시간 5마일의 속도로 시골을 활보하고 있어도 관계찮습니다. 혹은 버스로 여행을 하고 있어도 관계찮습니다. 아무것이고 좋습니다. 그 시를 자기의 태내로부터 끄집어내는 데 주의를 집중시켜 주는 도움이 된다면 아무것이고 좋습니다. 시인은 그 시 속을 들여다보고 수 시간 수개월도 썩 전에 최초로 머리에 떠올랐던 저 종자- 그 뒤 씻은 듯이 잊어버리고 있던 저 종자를 거기에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종자는 어느듯 보기 좋게 성장하고 발전해 있습니다.
이상에서 제시한 C.D.루이스의 말과 같이 한 편의 시가 탄생하게 될 때까지에는 시의 종자의 파종에서 발아, 또 개화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체내에서 오랜 시일이 경과 된 뒤에 비로소 한 편의 시는 형상화되는 것이다. 짧으면 며칠, 길면 몇 해의 세월을 요하는 것이니 저 조지훈의 「승무」의 구상에서 집필까지의 경로를 보더라도 맨 처음 한성준韓成俊의 춤을 보고 두 번째에는 최승희의 춤, 세 번째에는 이름 없는 승녀의 춤을 본 다음 다시 수원 용주사에 가서 승무 밖에 몇 가지 불교 전래의 고전 음악을 듣고 또 다시 김은호의 「승무도」 앞에서 두 시간을 바라보는 동안 7·8 매의 스케치를 했다 한다. 그러고도 미흡하여 구왕궁舊王宮 아악부에서 「영산회상」의 한 가락을 듣고 난 뒤에 비로소 「승무」의 골자를 얽게 되었다 하니 실로 구상한 지 열한 달, 집필한 지 일곱달 만에 겨우 「승무」는 완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R군 !
한 작품의 구상과 완성에 어찌 열여덟 달의 「승무」만 있으리요? 괴테의 "파우스트"는 60 년의 세월을 걸려서 완성했다 하니 실로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 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는 데도 소쩍새와 천둥과 먹구름이 동원되고 끝내는 무서리까지 참여시켰을 뿐 아니라 잠이 오지 않는 긴긴 밤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실로 이 수다스러운 상념을 이 시인은 어떻게 처리하고 어떻게 압축시켜서 끝내는 그 형상화 공작에 애를 썼는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지훈의 경우와 서정주의 경우를 막론하고 그러한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 시가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인가?
R군.
나는 이 프로세스의 모든 누적을 그 시인에게 있어서의 정서의 역사- 인생의 역사, 철학의 역사라고 불러도 좋다-라고 부르고 싶다. 인생을 철학하고 사유하는 아름답고 진실한 정서의 역사가 없는 한 그들은 어떻게 예술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정서의 역사에서 호흡하는 한 인생을 진실하게 사유하고 철학하지 않고서야 어찌 인생을 아름답고 진실하게 노래할 수 있겠느냐? 요컨대 이 프로세스의 참된 총화에서 작품은 탄생한다는 것을 부디 잊지 말아 다오. 참된 총화라 함은 어디까지나 인생을 진실하게 사유하는 그 시인의 철학을 지칭하는 것이니 이 철학의 심천광협深淺廣狹에 따라서 그 시인의 가슴에 던져진 종자의 호불호는 결정될 것이다.
좋은 종자에서 좋은 개화와 좋은 결실은 약속될 것이요, 나쁜 종자에서는 아예 좋은 결실의 약속은 불가능한 일이다. 괴테는 스피노자와 칸트의 철학에 의거하였으니 그의 시의 근원에는 스피노자와 칸트라는 대하가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쉽사리 알 수 있을 것이며, 저 인도의 시성 타고르 또한 그의 사상의 근원은 인도 고대의 종교 철학인 우파니샤드Upanisad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조국이여 ! 나는 그대에게 나의 모든 것을 바치노라. 그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노라. 그대를 위하여 나는 울고, 그대를 위하여 나는 노래 부르리. 나의 칼은 부끄러움에 녹슬었어도 그대를 휘감은 쇠사슬을 끊으리.
오오 ! 나의 조국이여 !
이렇게 그는 절규하였으니, 그 당시 영국의 관헌이 이 저항의 시를 탐탁스럽게 생각했을 까닭이 없다. 실로 이 위대한 저항의 시는 이 시인의 위대한 철학에서 출발하였을 것이니 이런 예는 매거할 겨를조차 없을 것이다.
저 영국의 유명한 시인 바이런은 그의 불기분방不羈奔放하고 강렬한 자유혁명 사상이 조국에서 용납되지 않자 끝내 그리이스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객사하였으니 이 또한 바이런의 정열의 소산이 분명하지 않은가?
끝으로 한 가지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요즈음 문제되는 난해시에 대한 것인데 그 시가 어떠한 문예사조- 다다이즘이건 슈르레알리즘이건 또는 모던이즘이건 실존주의이건 좋으나 다만 문제의 초점은 그 난해시의 가치가 역사적 가치의 유무로 그 존재가치가 결정될 것이다. 물론 전위적인 시가 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비난과 고독 속에 버림을 받은 예는 얼마든지 있으니 ‘알 수 없다’는 비난으로 그 시의 가치를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령 엘리엇의 예를 보더라도 발표 당시에 난해하다고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황무지"의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은 자라고.
의 시구가 30여 년이 지난 오늘에는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더라도 역사를 한 걸음 앞장 선 엘리엇에게 난해의 책임이 있다느니보다는 그를 따라가지 못한 독자의 태만에 그 책임을 돌려야 할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만일 독자의 비난을 그대로 긍정해야 된다면 그것은 시의 진보를 거부하는 무지일 것이요 이 무지는 결국 역사의 진전을 거부하는 우매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난해의 시를 전적으로 독자의 태만에만 그 책임을 돌릴 수 있느냐 하면 또한 그것도 아닐 것이니 그 시인이 의지하고 있는 철학이 공허한 것이라면 그의 사상 감정도 공허한 것일 것이니 그것은 난해라는 의상을 입힘으로써 그 공허를 캄플라쥬하는 데 불과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허수아비에 입힌 의상 이상의 것이 못될 것이다. 지난 모 문예지의 ‘현대시의 기본 과제’라는 설문의 대답 중에는,
우선 내가 시급히 요구할 과제는 나 같은 무식쟁이도 좀 알 만한 시를 써달라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의 부조리성이 어쩌구 거기서 얻어진 생활 경험이 어째서 시가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는 나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메타포어·심벌·패러독스·아이러니 같은 것이 현대시의 밑천이 됐다고는 하지만 어째서 그런 시를 분만하게 되었든 그 이유야 여하튼 간에 남들이 봐야 이해도 안 되는 걸 버젓이 활자화하는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김우종
이런 흥미 있는 구절이 있었다. 소위 현대 시와 대중이라는 테마는 가장 많이 논의되는 문제이지만 이 설문에 대답한 평론가 또한 시의 주제를 강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사회의 부조리성을 완전히 소화 못한 시인들의 소화불량 증후에서 결과한 것을 지적했다고 보아서 무방할 것이다. 이런 소화불량증 환자가 어찌 엘리엇연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뎃상도 제대로 못하는 화가가 피카소를 흉내내는 난센스와 무모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면 R군 !
난해시에는 뚜렷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여 그 책임의 소재를 절연截然이 가려내야 한다는 것은 알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요는 어떻게 우리가 살아야 가장 가치 있는 생활자일 수 있느냐에 귀결할 것이니 시의 고향은 바로 생활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행동은 아름다운 생활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이 행동에 대한 또한 이 생활에 대한 향수와 동경이 바로 시가 아닐까? 시를 쓴다는 것은 시에서 살고 싶은 욕망에서 발로하는 행동의 일단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