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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18 10:59
현대시의 난해성에 대한 소고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756  
   현대시의 난해성에 대한 소고.hwp (20.0K) [33] DATE : 2011-11-18 11:02:37
본 글은 1960년 재유문학에 게재한 글입니다.
 
 
현대시의 난해성에 대한 소고
 
 
오늘날 일반적으로 불리어지는 현대시는 1908년에 창간된 '소년' 지상에 실린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로부터 발단되었다. 종래에 시세계를 독점하고 있던 ‘하노라’ ‘어즈버’ 식의 가장 동양적인 체념과 자연관조의 비현실적인 시조의 세계와 생경한 번역 투의 창가의 경지를 박차고 이에 반기를 높이 든 것이 바로 육당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이었으니 이것이 현대시의 여명으로 부정할 수 없는 정설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당시 이 작품이 신체시라는 까다로운 명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그 체제가 새롭다는 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뒤 이는 신시니 자유시니 등으로 불리어졌으니, 우리나라 전통적인 시조나 가요의 정형적인 음수율에 비하여 어떤 제약을 받지 않는 새롭고 자유스러운 시 곧 형식이 없는 형식으로서 시를 쓰게 된 데서 이런 명칭이 붙게 되었다. 현대시란 명칭은 1934년경 편석촌에 의하여 수입된 모더니즘 운동인 주지파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견해일 것이다.
신체시에서 신시로 신시에서 자유시로 자유시에서 현대시로 그 명칭이 바뀌는 동안 반세기 가까운 역사를 거쳐서 오늘의 시를 이루게 되었으니 신체시가 종래의 시조세계의 안이성에 반기를 들었다면 신시는 육당의 민족적 계몽주의의 진부한 고전성에 반기를 들었으며 자유시는 '창조' 시대의 요한의 이상주의와 안서의 감상주의를 비롯하여 '백조' 시절의 병적 낭만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할 수 있고 현대시는 정지용의 감각적인 순수서정시를 필두로 그 무렵의 서정시에 반기를 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가 어느 분야의 예술보다도 새로운 역사의 설계를 위하여 항상 그 앞장에 서서 기존질서와 권위를 부정하게 된 것은 비단 다다이즘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도에서 모더니즘은 오늘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듯이 지난날을 새롭게 뒤바꾸는 데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좀 지나친 말인지 모르나 옛 시조와 가요의 세계를 부정 탈피하고 나오게 된 육당은 그 당시에 있어서의 모더니스트라면 주요한은 육당에 비하여 모더니스트였고, 요한에 비하여 월탄과 소월이 모더니스트라면, 정지용은 월탄과 소월에 대체된 모더니스트일 것이며 편석촌과 이상은 지용과 영랑에 비하여 모더니스트가 아니었을까? 오늘날도 이들의 세계를 이어받아 새로운 시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김규동 이봉래 김경린 조향 등을 배양토로 하고 발아와 성장을 꾀하는 모더니스트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는 묵은 시가 되고 묵은 시는 묵은 생활과 더불어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니 오늘의 현대시도 그 어느 때인가는 묵은 시로 화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 시에 따르는 시대성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우리들이 지난 세대의 시작품을 읽어 그 시로 하여금 우리들이 처하고 있는 우리들의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과학 전문가들이 뉴톤의 프린키피아 를 읽는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김소월의 서정시가 그 당시 아무리 완미한 것이라 치더라도 오늘날 그 시를 모방하는 잠꼬대는 없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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