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시를 쓴다는 것은 시에서(여기서 ‘시에서’란 ‘생활의 완전경’을 의미함) 살려는 욕망에서 발로된 행동의 일단이라고 나는 생각하므로 시의 창작은 반드시 철학을 기조로 건립한 위대한 정신적인 건축물이라야 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소. 이 건축의 완전을 기함에는 첫째 물질문명의 혜택으로써 얻은 토로홈 증세로 쓰고 있는 안경을 벋어 던지기 위하여 토로홈을 근치하여야 할 것이니. 먼저 그렇게 건전한 인생이 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건전하고 명확한 시찰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전치 못한 인간에게서 시가 나온다는 것은 물론 기적이려니와 그것은 신음 이상의 것이 못 될 것이오.
자연을 역행하는 이 물질문명의 탁류에서 헤엄치는 한 우리는 참다운 생활을 못 가짐과 함께 진지한 의미로서의 참다운 예술(시)을 가질 행복과는 인연이 멀 것이오. 그러므로 나는 자연과 인생이 가장 접근될 때에, 그보다도 자연과 인생이 분리될 수 없는 지경에서가 아니면 인간생활의 법열을 찾고 싶지 않소.
자연과 인생이 분리될 수 없는 지경이란 동시에 생활과 시를 분리할 수 없는 대조화의 지경을 의미하는 것이오. 이 정요한 지경에 하루 바삐 도달하기 위하여 우리는 혼란한 생활과 혼란한 예술의 혼연을 짓밟고 넘어서는 새벽을 향하여 위대한 출발을 하여야 하겠소.
그러므로 우리는 저 묵어빠진 상아탑 안에 있어 미세한 말초신경의 찰나적 발작으로써 앓는 애수를 노래하는 가장 경박한 서정시인들(?)을 어서 바삐 먼 주병酒甁으로 이주를 시켜야 하겠고, 아울러 어리석은 직업적 문학선수들은 만주국 이민으로라도 이주를 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오.
그리하여 우리는 전적으로 힘=영감을 상실한 그들의 아무 작은 능력도 없는 전연 공허한 행동을 일소하여야 할 것이오.
시단은 무통일한 교향악의 연주를 비롯한 지 오래이매 지금 그 연주 중에 있는 시단에는 그런 유의 악사인 시인들의 등단이 나날이 불어가는 중이오. 언제까지나 이 통일성 없는 교향악은 시단의 운명을 연장하려는지요. 우리는 어서 바삐 이 무통일한 교향악의 임종을 재촉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상은 새삼스러운 나의 제의가 아니라 일상 사색하고 있는 것의 작은 편린의 나열에 불과하오.
1934.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