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의 엽색행각
1.
안두案頭에 걸어 둔 한난계가 33도를 오르내리는 혹서고 보니 통기면 금이 갈 듯 사뭇 짙푸른 7월 하늘 바라만 보기에도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다. 숨이 컥컥 차오르는 더위를 가까스로 견디다 지치면 그런대로 초록으로 뒤덮인 뜰을 거닐어도 보지만 좀체 더위는 가시질 않는다.
중진국권을 향하고 내닫는다고는 하지만 남들처럼 피서 겸 관광이랍시고 걸핏하면 세계 각지를 문턱 밟듯 넘나드는데도 우리는 겨우 찾아간다는 게 가까운 해변이 고작이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매일 일천 명이 넘는 관광객이 우리나라에 들이닥쳐 법석을 떤다는 이야기다. 그 덕분에 외화 획득에 톡톡히 재미를 보는 모양인데 섹스관광이라는 개운찮은 이야기가 떠돌아 입맛이 씁쓸하다. 한때 경제동물로 후진국 사람들로 하여금 군침을 흘리게 하던 그들이 이젠 호색동물이란 별명으로 떼를 지어 대외진출에 선봉을 달리게끔 됐다니 경제 성장과 문화 성장이 병행되지 않는 한 경제 성장의 독주란 돼지에 진주가 될 우려가 없지 않다.
각설, 푸른 목장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황소를 넌지시 바라보던 개구리가 있었다. 그 개구리는 나도 어떻게 하면 저 황소처럼 뚱뚱해질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나머지 배에다 힘을 잔뜩 주어 숨을 들이켰다. 차츰 뱃가죽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신이 난 개구리는
“어때, 저 황소만큼 뚱뚱해졌나?”
옆에 있는 어린 개구리에게 물었다.
“아직 멀었어요.”
그 개구리는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바람을 들이마신 다음.
“이만하면 됐지?”
“아직 어림도 없는데요.”
“이래도?”
“아직도 !”
“이만하면 됐겠지 !”
하고 다시 묻던 그 개구리는 뱃가죽이 늘어날 대로 늘어나 펑 소리와 더불어 그예 터지고 말았다. 이것은 「개구리와 황소」라는 우화다. 아무리 가난해도 황소를 시샘하는 어리석은 개구리가 아닌 데에 우리 문화의 자랑과 우리 겨레의 긍지는 있다. 섹스 관광을 즐기는 족속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뱃가죽이 제법 부풀어 오른 어리석은 개구리의 엽색행각이 아닐는지….
2.
비닐봉지에 담아서 팔고 있는 단물에 유해색소가 들어 있으니까 먹어선 안 된다느니 인체에 유해한 매약의 판금과 아울러 그 약명이 메이커 별로 상세히 보도되어도, 여전히 비닐 주스는 노점에 즐비하고 판금조치를 했다는 그 숱한 약을 진열장 안에 보아란 듯이 내놓고 파는 것이 우리 주변에서 보는 풍경들이다.
그때그때 수거를 해도 뒤이어 나돌아서 미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당초 수거를 단념한 탓인지는 몰라도 보기에 딱한 풍경임에는 틀림없다. 상행위가 아니라 간접 살인 행위를 하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자탄 실험이 있은 뒤에는 바다에서 잡아내는 생선도 방사능의 감염 여부를 세밀히 검사해서 시장에 돌리는 것이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 실시하고 있는 실정인데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 우리나라에선 이런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평소 고춧가루와 마늘로 단련시켜 놓은 우리네의 오장육부고 보면 유독색소나 방사능쯤이야 능히 견디어낼지도 모르긴 하지만 국민 보건에 너무 등한시하고 있지 않나 싶다.
요즈음 암 유발의 원인이 된다고 갑자기 사이클라메이트 이야기가 떠들썩한 것을 보니 한심스러운 생각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에서 코카콜라만도 연간 매상고가 물경 3천 40억 원이 넘는 거창한 것인데도 판금조치를 내렸다니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만치 국민 보건을 중시하기 때문에 동물 실험에서 유독성이 판명되면 인체의 유해량에 관계없이 판금조치를 내리기 마련이니 오늘의 미국이 누리는 부강의 까닭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언필칭 미국 ! 미국 ! 하고 떠들어대면서도 이것만은 좀체 따라갈 눈치조차 안 보이니 더욱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다행한 일은 우리 국산 콜라들은 설탕을 쓰고 있으므로 무해하다고 해명하고 있으니 안심이 될 뿐 아니라 머지않은 앞날에 사이클라메이트 사용으로 판금을 당하고 있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를 단연 물리치고 메이드 인 코리아의 버젓한 상표가 미국 천지에 판을 칠 날도 꿈같은 이야기지만 있을 듯(!) 싶으니, 드디어 외화획득의 길은 열리게 된 모양인가. 복 있을진저 ! 국산품수출의 전도에…
3.
시멘트 담을 고치고 난 뒤에 두 번이나 밤손님을 겪었다. 한 번은 다행히 도둑이 도망쳐서 무사했지만 두 번째 들어 온 손님은 그예 적지 않은 손해를 끼치고 떠났다.
벽에 걸어 두었던 하복을 모조리 걷어가고 시계를 가져간 것쯤이야 월부 양복을 맞추면 되고 헌 시계를 다시 차고 다닐 수 있는 일이지만, 앞뒤 마루에 흙탕 발자국을 이겨놓고 제멋대로 덧문을 뜯어 젖힌 뒤에, 그 흙탕 발자국을 요 위에까지 남겨놓고 간 것을 보았을 때 새삼 머리끝이 쭈삣하고 소름이 끼쳤다.
요즘 유행하는 근대화 덕분에 시멘트 담이 늘어가는 것이 오죽 좋은 현상이랴마는 날로 산이 황폐해 가고 하상河床이 올라오고 보니 값 비싼 판자 울타리를 하느니보다는 한몫 돈이 들지만 울며 겨자 먹는 격으로 시멘트 신세를 지고 보니, 이젠 밤손님이 손쉽게 넘어들게 되어 딱 질색이 아닐 수 없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을 다녀온 사람의 말을 듣자니 그 나라에는 모래가 귀해서 시멘트 건축은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석조 건물이 아니면 그저 흔해빠진 목재로써 이중벽으로 집을 짓는다니 부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국가 예산의 40%에 가까운 돈이 사회 보장으로 나간다니 천국에 가까운 이야기다.
좀도둑을 막는 방법으로 시멘트 담장 위에 유리쪽을 다닥다닥 박는가 하면 마람쇠줄을 칭칭 두르는 사람도 없지 않으나 도둑맞는 불쾌지수에 못지않을 것 같아 차라리 그렇게 갇혀 살고 싶은 생각은 아예 하고 싶지 않다. 요는 어서 산에 나무가 울창하고 맑은 시냇물이 벅차게 흘러가노라면 자연 인심도 풀릴 것이요 인심이 풀리고 보면 시멘트 담을 넘어드는 밤손님도 줄어들 것이 아닌가?
그때쯤 되면 시멘트는 모래 많은 나라로 수출하게 되고 우리나라엔 석조와 목조 건물이 즐비하게 세워질 것이다. 모래 없는 나라 ! 그것은 우리가 의욕하는 근대화가 아니라 초근대화가 되는 말일 것이다.
4.
도쿄 올림픽 때의 일이라고 기억된다. 그때 루브르 박물관의 이동전을 도쿄에서 열게 되었다. 이 이동전을 위해서 프랑스에서는 전문위원이 3 년 전부터 도쿄에 출장하여 프랑스와는 사뭇 다른 일본의 기후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전시할 그림의 변질을 우려한 나머지 온도와 습도를 측정하여 전시장의 일부 구조를 변경해가지고서야 비로소 반출 반입의 수속을 밟았다는 것이다.
연전에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세잔의 「대수욕도大水浴圖」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물경 5억 원에 팔려 나가게 되자 온 나라가 후끈하게 소란을 피운 일이 있었다. 프랑스인 공유의 재보가 외국에 팔려 나간 데 대한 프랑스 지성의 노여움은 끝내 문화상文化相을 힐책하는 법석을 피우는 데까지 이르렀는가 하면 세잔의 「대수욕도」를 사들여 온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는 관광객 수가 비약적으로 격증했다는 이야기다. 이번에 조선일보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경복궁 미술관으로 프랑스 현대 화가들의 작품이 옮겨지는 데도 적재한 3량의 트럭을 10여 대의 경찰 세단과 사이드카의 호위해서 출국시켰다니 웬만한 나라 대통령의 행차만큼이나 삼엄했던 모양이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엑스포에 나들이하게 된 우리 국보 32호인 팔만대장경판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보따리장수 짐 꾸리듯 가지고 나가다가 절차 미비로 반출이 저지되자 김포 공항에 방치해 두고 몸만 떠난 뒤 아무 호송도 없이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다니 참으로 눈물겨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기야 지금까지 그대로 보관(일제 때 일부를 도난당했지만)을 해 왔다는 것만도 다행한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국보급의 출국이 이처럼 소홀히 다루어져서야 될 말인가? 가난한 우리네 살림살이에 저 프랑스에서처럼 경찰백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고 떠들자는 것은 아니다.
다 그래야만 국보의 국보다운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호송원도 없이 혼자 비행기에 실려 갔다니 가슴 아픈 이야기다. 국보 32호 팔만대장경의 고독이야말로 우리들의 비극이 아닐까? 우리 것을 우리가 그토록 푸대접하는데 출국 후엔 과연 얼마나 대접을 받을 것인가? 아무려나 국보 32호의 무사 귀국을 다만 충심으로 바랄 뿐이다. 나무아미타불.
5.
십팔만 가구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한 신라의 서울 경주에는 매일같이 가무음곡이 그칠 날이 없고 행여나 그 기와집이 그을릴세라 숯으로 밥을 지어 먹었다고 전하니 아마 멋의 극치를 부릴 대로 부린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파헤치는 능마다 나왔다 하면 금관이요 금붙이 투성이고 보니 그 쏟아져 나오는 황금문화로 보아 그 정도의 멋이야 부리고도 남았으리라 믿어진다. 더구나 금관에는 출자형出字形의 기둥을 세워 종잇장 같은 금판에 곡옥曲玉을 물렸다니 그 연금술도 오늘이 무색할 정도로 발달했던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예술품으로서 재탄 삼탄을 금할 길 없다.
그런데 생각나는 것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백옥 같은 쌀밥을 숯으로 지어먹으며 춤과 노래로 나날을 지냈다니 그 쌀밥을 대고 숯을 구워대던 농부와 탄부들도 거기 어울려 그토록 멋있는 나날을 보냈을까가 궁금하다.
금관만 해도 그렇다. 한 개쯤 만들어서 대를 이어 물려받아 쓴다 하여 왕 노릇을 못할 리 없다. 성군이고 보면 그까짓 왕관을 구태여 머리에 얹어야만 할 것도 없으리라. 그 수많은 금관을 위시하여 금붙이를 만들자면 채금·야금冶金에 동원된 광부의 노고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요 연금술사의 노고 또한 이를 데 없었으리라. 신라의 골품 계급 이하에는 평민·부곡·노예 등 여러 가지 계급이 있어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모두 피치자였고 더구나 그 중에도 노예는 자유를 거세당한 천민으로 그 수효가 막대했던 모양이다.
<당서 ‘동이전 신라조東夷傳 新羅條’>에 ‘宰相家재상가……奴僮三千人노동삼천인’이라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힘없이 선량한 백성을 몇 천 명씩이나 종으로 거느리고 거드름을 빼던 것을 생각하면 여간 불쾌한 때가 없지 않다.
링컨의 말마따나 “노예 제도가 나쁘지 않다면 나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새삼 생각난다. 어찌 보면 그 찬란 무비한 신라의 황금문화의 이면에 깔린 것은 노예의 뜨거운 눈물로 이뤄진 흔적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