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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31 17:00
동문서답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122  
 
동문서답

1.
항상 짓밟히고 찢기기 마련인 나의 보잘것없는 자서전에 새해라서 무슨 새로운 설계도가 있을 리 없다. 똑바로 말해서 ‘재주넘는 곰’으로 평생을 거의 소비한 생존자에게 만일 설계도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자서전에 못지않게 짓밟히고 찢기고 뽀얗게 먼지가 앉은 설계도에 불과할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그것은 건축을 전연 무시한 설계도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매양 이 설계도를 구겨 쥐고 살아가는 나요 그런 설계도를 기초삼아 언젠가는 스스로의 인생을 건축하려는 것이 나의 꿈이요 의욕임에도 틀림없다. 이렇게 평범한 속에서 누적되는 나의 꿈의 총화는 내 얼룩진 자서진의 몇 페이지를 마련했고 또 마련하면서 있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걷잡을 수 없는 역사의 격류는 8·15를 15년 전의 까마득한 옛날로 몰아 보냈고, 뒤이어 6·25의 거센 탁류가 지나가는가 하면, 4·19의 벅찬 분류가 다시 한 번 구겨진 내 설계도의 찢어진 자락을 바람결처럼 스쳐가곤 했다. 이런 격류가 굽이칠 때마다 가슴 깊이 접어 두었던 설계도를 꺼내보지만 거기 알맞은 건축을 꾀하기에는 너무나 요원한 거리가 있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다. 참는 길에 그저 벙어리처럼 꾹 참아보자는 것이 예나 다름없는 나의 숨김없는 심정이다. 그렇다고 체념이라거나 귀의라거나 적멸寂滅 같은 지극히 동양적인 예의에 내 낡은 설계도를 그대로 묻어 두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것이라고 신념한다. 참고 견디고 하는 동안이 낡은 설계도에 첨삭과 수정과 보충이 있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4·19는 혁명이라고 한다. 모든 시인이 목청을 다듬어 노래하기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마이편同馬異鞭’의 작은 변란이요 또 하나의 똑같은 낡은 말이 내닫는 것은 마치 내 낡은 설계도와 다름이 있으랴? 악마에게 앗긴 오늘이 내일까지 영원히 악마의 것일 수는 없지 않으냐? 차라리 붓을 꺾고 말지언정 멍든 역사와 얼룩진 현실을 찬미하고 구가할 수는 없다.
나의 설계도가 영원히 햇빛을 못 볼지언정 나폴레옹이 바이마르에 진공했을 때 원수의 말발굽 아래에 송시訟詩를 봉정한 괴테가 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안심하자. 노老 르낭은 “인류의 길은 산길이다. 나선상螺旋狀으로 오르기에 어찌 보면 후퇴하는 것같이도 보이지만 결국은 올라가는 것이다”라고 젊은 로망 로랑에게 말했다는 것을 나는 회상한다. 결국 나의 낡은 설계도란 정점을 올라가는 기구한 산길의 안내에 쓰일 때 보다 큰 반응을 가져올 것이다.

2.
작고한 문우 이무영의 단편에 <법>이라는 짤막한 이야기가 있다. 읽은 지가 하도 오래 되어서 잘 기억할 수 없으나 줄거리를 대강 추려보면, 해방 후 입법 의원에 입후보한 어느 시골 지주가 자기가 당선만 되면 소유 토지를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해 주겠다는 선거 공약을 내걸었는데, 막상 당선이 되자 선거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분개한 작인作人들은 마침 귀향한 그 지주를 찾아가서 선거 공약을 언제 이행하겠느냐고 교섭을 하자 그 고을 서장과 술자리를 벌이고 한참 흥청대고 있던 지주는 찾아간 작인들을 일언지하에 폭도로 몰아 잡아넣는다. 그러니 법이란 결국 거미줄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다.
거미줄이란 본시 하루살이나 나비나 잠자리 같은 게 걸려들기 마련이지 참새쯤만 되어도 걸려들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법에 등장하는 소작인이란 하루살이가 아니면 나비나 잠자리일 게 분명하다.
나는 법학도가 아니다. 법에 대해선 상식 이하에 속한다. 육법이 무엇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는대도 선뜻 대답을 하자면 끙끙거려야 할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법의 근본정신이 그 복잡다단한 법이 없어도 능히 살아갈 수 있는 인간 사회의 건설에 있다면 어찌 하루살이만 걸려들어야 하고 참새쯤만 되어도 뚫고 나갈 수 있는 거미줄이어야겠는가.
실러의 <군도群盜>에 ‘법률이란 소리개가 되어 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 것을 달팽이 걸음걸이로 만들어 버린다. 법률은 위인을 만들어 낸 예가 없다. 그러나 자유는 거인과 비범한 인물을 부화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법은 인간을 속박하는 수가 없지 않다. 그것이 악법이고 보면 위인을 만들어낸 예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위인을 속박하니 서글픈 일이다. 더구나 만인에 평등해야 할 법이 때로는 거미줄같이 우리들의 눈에 반영될 때처럼 서글픈 일은 없다.
그렇다고 철사줄처럼 억센 법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실러의 말을 뒤바꾸어 법률이, 소리개나 되어 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 것을 달팽이 걸음으로 만들 수 있다면 차라리 세상은 좀 조용해질는지….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무지이기를 바란다.

3.
이젠 아득한 옛이야기지만 생각하면 역시 새로운 이야기요 언제나 잊을 수 없는 이야기다. 휴전을 앞두고 치열한 전투가 한창 벌어지던 무렵, 동부 전선의 시산시해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한 병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육체는 대부분 달아나 버리고 겨우 일부가 남았으니, 두 다리는 흔적이 없고 두 손은 불에 타서 조막손이 된 데다가 실명까지 하게 되어 호흡만이 유일한 생명을 증명해 주는 불행한 상이군인으로 고향에 돌아왔던 것이다. ‘여보게, 하마터면 동부전선에서 죽을 뻔했네.’ 친구를 만날 때마다 그는 살아서 돌아온 것이 대견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자위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신기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가 어쩌면 이토록 측은하게 가슴에 파고드는 것일까.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손이 오그라지고 앞마저 못 보는 그 병사는 생명을 건진 데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열愉悅을 느꼈기에 그 이야기는 우리를 이토록 사무치게 하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그 ‘하마터면’이라는 부사가 우리의 가슴을 이리도 짜릿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살아 돌아온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마 그 병사는 ‘하마터면’이라는 이 부사에 힘을 주었을 것이다.
이 푸른 대지를 디디고 한 발짝 옮길 수도 없고 따뜻한 손목 한 번 쥐어 볼 수도 없고 더구나 그리운 사람의 얼굴 한 번 바라볼 수 없는 그대로 살덩어리의 한 부분이 남아 있는 이 생명체는 한낱 호흡하는 기계와 다를 바 없건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것이 그에겐 무상의 기쁨이었으리라.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이 고귀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인간은 치열한 싸움을 하는 것이요 또 싸워야 하는 것이라 생각할 때 이 병사가 던지는 ‘하마터면’이라는 부사 한 마디는 생명을 구가한 그 어느 위대한 시인의 한 구절의 시보다도 몹시 심장을 울리는 것이다. 파우스트 박사가 부활제의 종소리와 합창 소리를 듣고 나서 죽음을 단념하고 인세人世로 되돌아 왔다는 이야기쯤은 이 절실한 병사의 한 마디 ‘하마터면’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치스러운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참으로 우리 인간은 죽고 싶도록 살고 싶어 한다. 그토록 생명은 아름다운 것이요 그토록 생명은 고귀한 것이다. 그토록 지고지순한 것이 바로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지고지순한 생명의 의의 있는 연소를 위해서 위계와 만착瞞着을 허용할 수 없는 좌표를 세워야 할 중대한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불행한 역사의 와중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역사의 되풀이가 없는 곳에 우리가 찾는 행복은 도사리고 있으리라.

4
찬물도 상이라면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가렴주구에 시달려 사노라고 언제 두둑한 상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 겨레에게서 나옴직한 속담이다.
하기야 일제 말기에 그들에게 충성을 다한 문인이 있어 제법 두둑한 총독상이란 것이 그에게 주어졌지만 그것은 민족을 저버린 말하자면 목에 걸리는 상이었으니 말할 것도 없고 해방 뒤 비로소 우리에게도 상다운 상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해마다 주어지는 숱한 상이 시상 뒤에는 으레 개운치 않은 후문이 떠돌아 참으로 입맛이 개운치 않다. 더구나 그 상금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에 따르는 개운치 않은 후문도 상금과 정비례되니 더욱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자 그것은 일본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전통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까닭이요, 따라서 그것을 잘 살리는 것이 그 작가이고 보니 우리도 우리 전통을 찾아야겠다고 떠들어대는가 하면 노벨문학상을 목표로 하는 5개년계획 수립 운운의 얼치기들이 나팔을 불어댔다. 그 언제 우리가 우리 고유의 전통을 저버린 것도 아니거니와 문학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 되는 일도 아닌 것을 그 양반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유럽 어떤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거절하되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의 공죄를 따져 그것이 인류에게 미친 공보다는 죄가 컸다는 이유를 든 일도 있고 어떤 작가는 시상의 불공정성을 지적하고 거절하여 오히려 수상자보다 더 우러러보게 되었거니와 아인슈타인 같은 대 과학자는 그 상금을 받아서 이미 이혼한 옛날의 부인에게 송두리째 주었다.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의 교섭을 물리친 아인슈타인이 아니고서야 좀체 부릴 수 없는 멋이다.
도시 상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풍토인지 우리네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받아야겠다고 하는 데서 개운치 않은 시상 후문이 남는다. 천사만려해도 찬 물이 상일 수야 없다. 상이라면 찬 물이라도 좋아하는 습성을 버리는 날 아마 우리에게도 노벨상의 차지가 돌아오게 될 것이 아닐는지…….
5. 
사람이 와석종신臥席終身을 하기도 어렵지만 제대로 보람직한 유언을 남기고 떠나기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닌 성싶다. 더구나 그 유언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사후 유산의 분배에 그친다면 이 또한 속물을 면치 못할 것이니 말이다. 하기야 요즘 흔한 골육상쟁의 예방책이 안 되는 것도 아니겠지만 좀더 널리 인류사회엔 못 터뜨릴지언정 제 나라 제 겨레에게만이라도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것은 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광명을……’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는 괴테의 유언은 워낙 멋진 것으로 전해 오고 있어 어둠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인류에게 하나의 좋은 명銘이 될 수 있겠지만 ‘다시 한 번 가을하늘을 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겨 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본 어느 작가의 멋도 괴테에 못지않을 것이다.
두옹杜翁(톨스토이)이 80여 세의 노구를 이끌고 출가하여 어느 수도원에 있는 누이 마리아를 마지막 만나러 가는 길에 갑자기 발병하여 아스타포브라는 조그만 시골 정거장 역장실에서 임종할 때 그 정거장에 전화·전신선을 새로 더 가설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지만, 그 보다도 ‘이 세상에는 구원의 손이 뻗히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허다한데 왜 이렇게 많이 내 옆에는 와서 있느냐’는 말을 최후로 남기고 마침내 눈을 감았다고 당시의 각국 신문은 앞을 다루어 호외로 그의 부음訃音을 전했던 것이니 생각하면 다시금 뼈에 사무치는 유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두옹杜翁이 떠난 지 60년이 가까워도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여 사상의 여하를 헤아리지 않고 <부활>과 <전쟁과 평화>는 여전히 애독되고 있으며 스크린에서까지 수많은 관람객은 손에 땀을 쥐는 것이 아닐까?
두옹杜翁을 바로 읽는다는 것은 인간의 양심과 그 권리를 바로 읽는 길이며 아울러 인류의 운명을 바로 읽는 길이기에 그의 유언은 그 작품과 더불어 우리 인류의 영원한 등불이 아닐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