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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30 16:28
탈피와 둔갑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290  
 
탈피와 둔갑

1. 탈피와 둔갑
일제가 도망간 뒤 우리나라에 남은 그 상처는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느니보다 문자 그대로 만신창이의 가엾은 꼬락서니는 그대로 백공천창百孔千瘡이었으니, 시방도 우리 주변에 그 흔적이 역력히 보이고 들리게 되어, 눈꼴사납고 비위 거슬리는 게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미루어 지독한 중태에서 신음했던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정치 경제 종교 문화 할 것 없이 놈들은 속속들이 파고들어 골병을 들여 놓고, 끝내는 나나니벌처럼 엉뚱하게 동조동근설까지 슬그머니 내세우고 둔갑을 하던 놈들이니 어찌 말할 나위조차 있을까 보냐?
해방 뒤 우리들은 건설과 아울러 이 불치의 난병을 치료하기에 여념이 없었건만, 지금도 그 병근은 송두리째 뽑히지 않고 여기저기 남아있으니 우리들의 병을 두고 보더라도 오장육부에 침범하는 병쯤이야 현대의학으로 거의 손볼 수 있지만 정신계통을 침범한 놈은 박 장로의 생명수(?)로도 아직 완치되었다는 말을 과문한 나는 들은 일이 없다.
그런 점으로 보아 일제가 끼친 병균은 아무래도 정신계통을 침식하는 가장 질이 나쁜 놈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해방 뒤만 해도 그 직전까지 거의 일제용어로 써 오던 전부는 아니었지만 일본말을 씻은 듯이 현해탄 너머로 돌려보냈다.
무의식중에 불쑥 나온다 해도 여간 쑥스러워 하지 않았었는데 요즈음엔 예사로 영어를 쓰듯­ 하기야 일본말이 외국어가 아니라는 게 아니지만 일본말을 그나마도 아직도 유창하게 다루는 것을 볼 때 상대자의 속이 물끄러미 바라보이는 것은 나의 과분한 애국심의 발로에 있는 것만은 노상 아닐 것이다.
국어정화문제가 그렇게 귀가 무디게 논의되고 음식점이란 음식점에는 왜음곡 왜노래를 금지하라는 방을 써 붙여도 여전 일본 노래와 일본말은 때나 만난 듯이 흘러나오는 데는 딱 질색이다.
상대편이 허물없는 자리면 왜 그렇게 왜말을 혼용하느냐고 허심탄회하게 물어보기도 한다. 답왈答曰, ‘그놈 일본말이라야 삔또 온다.’는 것이다. 선의로 해석해서 어감이 좋다는 모양이다. 좀더 언어생활에 좋은 용기와 탈피할 수 있는 양심을 불러일으켜 주었으면 싶다. 다리에 새겨 놓은 대정大正이니 소화昭和를 뭉개고 단기檀紀」로 고치는 것도 일제잔재를 씻어내는 한 방편이 되겠지 싶다. 하지만 이런 시각적 방면보다는 청각적 방면에서 좀더 탈피가 요청되지 않을까.
겨울로 접어들면서 또 한 가지 우리의 청각을 몹시 거슬리는 것이 있으니 ‘모찌 사압시다, 당고’가 바로 그것이다. 오뎅을 꼬치안주로 고칠 바에야 찰떡이나‘인절미’가 있으니 모찌는 고치기 쉬운 것이요 당고 역시 경단이나 단자라는 우리말이 버젓이 있으니 고친들 무엇이 부자연스러울 것인가. 오죽해야 구두닦이 등록도 좋지만 떡장수 등록도 시켜서 이런 데까지 신경을 써주었으면 싶다.
이제 세 살 난 손주놈이 곧잘 말을 배워내는데 ‘모찌 사시오, 당고’ 하고 흉내를 내는 데는 딱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어감이 좋아서 지껄이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기야 대추나무가 한 번 재주를 넘어서 불꽃이 되더니 두번째는 왜 싸워로 둔갑을 하는 세상에 언어생활의 탈피과정에 있는 우리가 어디 매미 껍질 벗듯 그렇게 시원스럽게 선퇴蟬退하기란 그리 쉬운 일도 아니겠지만.

2. 언어와 문학자
해방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말이 자유라는 말이요 그에 못지않게 쓰이는 말이 민주주의라는 말일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자유와 통하는 길이기에 자유 하면 민주진영을 생각하고, 민주진영 하면 자유를 연상하게끔 된 까닭이 여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한 인간의 기본 권리인 자유와 한 집단의 기본 권리인 민주주의가 그 한계와 성격을 뚜렷이 나타내지 못한다느니보다는 선명하지 못한 데서 온갖 차질과 소란을 빚어내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민주주의라는 너울을 둘러쓰고 소수를 위해서 다수가 따라가야 할 때 민주주의는 역코스로 전락하여 집단의 기본 권리는 박탈을 당하고, 자유가 파쇼에 짓밟힐 때 인간의 기본 권리는 여지없이 박탈을 당할 것이다.
발언이라면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발표하는 것인데 민주주의적 기본권리가 보장될 때 비로소 발언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한 사건에 대하여 정당한 발언을 하자면 정당한 인식과 비판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다음에는 그 발언을 보장할 객관적 조건이 구비되는 데서만 발언은 성립될 것이 아닌가?
소금은 짜고 설탕은 달다는 거짓 없는 발언이 간간이 화를 입는 예가 있으니 바른 말에는 설화가 따르기 마련이요 바른 붓에는 필화가 따르기 마련인가 보다. 귀에 거슬려도 그 말이 바른 말이고 보면 우리 사회를 올바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니, 그 말이 행동에 옮겨질 때에는 과연 얼마나 위대한 힘을 발휘할 것인가? ‘너의 말이 행동으로 살게 하라.’ 다시 한 번 로망 로랑의 말을 되풀이하고 싶다.

3. 듣기 싫은 말
한다는 명사님들의 강연 대화에 말끝마다 붙이는 ‘마아’,  ‘에에 또’를 들을 때마다 구역이 나서 못 견뎠다. ‘여보 그것도 말이라고 하는 거요’ 하고 당장 핀잔을 주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더구나 라디오 방송에서 이따위 말을 태연히 내뱉고 있을 땐 그대로 라디오를 내동치고 싶을 뿐 아니라 그것도 말이라고 지껄이고 있는 그치의 코를 꽉 쥐어 실컷 흔들어 주고 싶을 때도 없지 않다.
역사를 새삼스럽게 들출 것도 없이 우리말은 한문에 쪄들려 반신불수가 되었다가 왜말에 만신창이가 되었고 요즘엔 영어에 쪄눌리게 되었다. 이렇게도 불행한 역사를 지닌 말을 되찾았기에 더욱 기쁘고 소중하니 우리는 우리말을 더욱더 사랑할 의무를 느껴야 할 것이다.
국어 학대가 심한 학교에서는 국어 시간보다 영어 시간이 곱절이나 되고 거리에 나가면 제과소 유리창에 ‘가시와모찌’, ‘찹쌀모찌’를 대서특서해 놓고, 밤거리에는 ‘당고 사쇼, 모찌’라고 외우는 소리가 차라리 유행가보다 구슬프다.
각설, 해방 직후 어느 국민학교 선생님이 가라사대 “여러분 인젠 해방이 됐으니 일본말을 해선 안 돼 알겠지…” 말인즉 옳은 말인지라 학생들도 이구동성으로 ‘예’ 했겠다. 여기까지는 이야기가 된다. 선생님도 반가웠던지 ‘요로시’라고 했다는 난센스가 생각난다. 대통령이 이 고장을 찾았을 때 ‘차렷 경례’ 하고 구령 부치던 선생님이 난데없이 ‘나오레’하고 외쳤다 하여 그 뒤 목이 잘렸다는 이야기도 모두 그 무렵의 웃지못할 이야기다.
우리말을 찾은 지 스무 해, 무던히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마아’, ‘에에 또’를 연발하는 명사들이 있는가 하면, ‘말본’, ‘이름씨’를 오늘까지 줄곧 가르쳐 왔는데도 새삼스럽게 ‘문법’과 ‘명사’로 뒷걸음질을 치다니 이것도 진서를 숭상하던 봉건주의 사대사상에 향수를 느끼는 것이 아니면 할아버지들이 틀어 올리던 상투사상을 되찾자는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마음의 상투를 잘라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4. 선유도 유감
그것이 호의가 되었건 어떤 의례적인 것이 되었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이 내 생활신조인데도 스스로 가해자의 편에 서게 될 때의 괴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나도 버젓한 피해자의 편에 가담함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을 날이 오려니 하고 벼르기도 하지만 좀 엉뚱한 말인지는 몰라도 크게는 정치와 경제의 보장이 없는 한 그것은 헛된 궁리에 불과할 것만 같다.
각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젊은 시인 R의 유혹을 저버릴 수 없어 선유도에 가게 된 것도 분명 가해자의 편에서 이루어진 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 R군의 집요(?)한 간청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설악을 다녀와서 채 노독도 풀리기 전에 선유도행을 하게 되고 보니 남 보기엔 꽤 팔자 늘어진 피서객의 축에 끼게 된 셈이다.
선유도행은 이번이 세번째다. 처음 찾아간 것이 벌써 삼십여 년 전 옛날, 두번째가 이번 동행의 R과 학생을 데리고 갔던 8 년 전의 일이고 보니 흘러간 세월과 더불어 그때의 얼굴들이 강물에 흘러가는 꽃잎처럼 아쉬울 뿐이다.
고군산 팔경은 예나 다름이 없지만 해수욕장으로 개장된 뒤 변모한 것이 적지 않다.  유람선이 생겨 어선의 신세를 지지 않는 게 편리했다. 비둘기 집 같은 관광호텔이 서 있는가 하면, 본보기로 세웠겠지만 담수 샤워장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관광지가 된 뒤 알아보게 섬 인심이 사나워졌다는 것이 무엇보다 아쉬웠다. 해변엔 천막이 몇 개 펄럭이고 반라의 군상이 겨우 백여 명 바다에서 텀벙거리는 한산한 욕장이어서 사랑의 도피처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욕장이 한적한 것은 차라리 좋다. 그리고 인심이 사나워진 것도 불가피한 일이다. 그보다 아니꼽게 눈에 거슬리는 풍경은 해변을 오가는 10대 소년들의 꼬락서니였다. 제각기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가슴팍과 등에다 빨간 페인트로 소속 학교 이름과 선유도라 써 붙이고 또 어떤 싱거운 친구는 가슴팍에 ‘무얼 봐’라고 붙이고 배꼽에 흉측한 것을 서슴없이 그리고는 우쭐대는 꼴이었다. 경포대 해수욕장에선 볼 수 없는 진풍경이어서 더욱 눈에 거슬렸는지 모른다.
또 하나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 하나. 이곳 해수욕장의 유일한 오락장으로 국산품 센터라는 게 있다. 국산품을 선전한다는 제법 의젓한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해만 지면 「동백아가씨」 「하숙생」 등속의 유행가를 목청이 터져라 마이크로 불러재끼면 천막 중앙에 공판을 마련한 이 센터에 남녀 욕객이 모여든다.
10 원에 카드를 사서 공판에 던지는 번호와 카드번호가 가로건 세로건 세 개만 맞으면 상품을 타게 되었지만 좀체 맞질 않는다. 원시적인 유희에는 차라리 애교가 있어 무방하지만 주인이란 친구가 손님이 공을 던질 때마다 ‘하이 ×번’ 하고 신이 나서 외친다. 다시 공을 던지라는 신호에도 ‘하이’하고 서슴없이 지껄인다. 한 손님이 미처 자기 카드의 번호와 대조를 못했던지 ‘좃또맛데(좀 기다려라)’ 하자 주인이 대노하여 ‘좃또맛데가 뭐야’ 하고 ‘그따위 왜말을 왜 함부로 지껄이느냐.’고 호통이다. ‘하이 하이’는 연발하면서도 ‘좃또맛데’에는 비위가 거슬려 낯박살을 주는 센터 주인의 적반하장에 R과 나는 폭소를 금할 수 없었다.
주체성을 부르짖는 계층의 인사들이 연설이나 방송을 할 때에는 ‘에또’가, 아니 ‘마아’가 거의 접두사나 접미사처럼 통용하고 있으니 국산품 센터의 주인의 난센스쯤은 차라리 애교로 보아 무방할 것 같다. 역시 해수욕장이 나의 안식처는 아닌 것을 뼈저리게 느끼었을 따름이다.

5. 작은 대화
일전 덕수궁에 들러 국전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기념사진이라도 찍자기에 잔디밭 옆에 자리를 잡고 막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앞을 지나가는 4·5 명의 고등학생들이 잔디밭에 써 붙인 표지판을 발길로 건드리며 한 학생이 ‘영어로 써 놔야 알아먹을 수가 있지, 이게 뭐야 !’ 하고 말하자 또 한 학생이 덩달아 하는 말이 ‘하다 못하면 일본말로라도 써 붙일 게지 !’ 제법 점잖은 체 서로 이야길 주고받기에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그 표지판을 굽어보았더니 저희들도 우스웠던지 킬킬거리며 지나갔다.
이것은 덕수궁 한 구석에서 일 분도 못되는 짧은 시간에 보고 들은 일이었다. 표지판인즉 버젓이 우리말 우리글로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아달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덕수궁을 빠져나와 국화전시장에 들르니 일본 관광객 일행이 녹색 깃발을 앞세우고 제법 호화로운 차림새에 조오리를 발에 꿰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돈이 남아돌아서 떼 지어 이웃나라를 문턱 밟듯 오고가는 그들이 미울 까닭도 없고 그렇다고 크게 부러울 것도 없지만 ‘하다 못하면 일본말로라도 써 붙일 게지.’ 하고 주고받던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는 이들 일본관광객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동안 우리 조상들은 한문을 배워 ‘진서眞書’로까지 추켜올리다가 해방이 되자 우리말을 되찾기도 전에 영어를 배우기에 또 열병을 앓더니 ­지금도 앓고 있지만­ 요즘엔 일본말까지 배워야 하니 남의 말만 배우다가 허송세월하고 제 말은 언제나 배울 것인가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쩌릿할 지경이다.
‘영어로 써놔야 알아먹을 수가 있지 이게 뭐야.’, ‘하다 못하면 일본말로라도 써 붙여야지.’ 하던 덕수궁 잔디밭 옆에서 주고받던 고등학생들의 작은 대화가 지금도 언덕을 넘어오는 파도소리처럼 내 가슴에 달려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6. 한글 전용에 대한 오해
요즘 어느 화가가 펴낸 <한자에 대한 중대한 오해>라는 책을 받아 읽다가 한글전용에 대한 지나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느낀 바를 적어보기로 한다.
씨의 주장인즉 한국어교육연구회의 「한자교육부활촉구성명서」에서 밝힌 ‘국어의 태반을 차지하는 한자어도 우리 국어다. 한자어는 한자로 가르쳐야 한문교육이 빨라진다. 이것을 한글로 써 놓으면 그 어원을 모르게 된다’는 주장을 부연하고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보아 무방하였다.
한자어도 물론 국어다. 한자어에서 오지 않은 순 국어인 사람, 봄, 가을, 길 따위와 다를 바 없다. 순 국어를 한글로 적는 것과 같이 학교, 선생님, 비행기 따위의 한자어에서 온 말도 한글로 적어 안 될 까닭이 없다. 선생을 선생先生으로 써서 가르치고 선先 자와 생生 자의 뜻을 가르쳐야만 이해할 수 있다니 딱한 고집이다. 한자어란 중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귀화한 것과 다를 게 없다. 마치 중국옷을 벗고 우리 한복으로 갈아입은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한자어를  표음문자인 한글로 쓰면 알 수 없다니 그렇다면  대부인은 남의 어머니 높임말이 아니라  큰마누라며  선생은 스승이 아니라 먼저 난 사람이며 제자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아우와 아들이란 말인가?
한자로 써야 할 또 한 가지 이유로 동음이의어가 많으니 한자 아니고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은 소설이다의 소설을 ‘소설小說’로 알게 될 바보도 없으려니와, 이 소설은 재미있다는 소설을 ‘소설小雪이 재미있다’고 생각할 바보도 없을 것이다. 문맥으로 알 수 있는 것인데 한자에 익어온 기성세대의 편견과 고집을 우리 후손에게까지 물려줄 필요는 없을 것이 아닌가.
한글만 쓰기로 한다 하여 한자를 배우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영어와 불어와 일본어를 배우듯이 얼마든지 배워도 좋다. 소련이나 독일에도 <논어>와 <도덕경>을 원문으로 읽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한글 전용을 반대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한자가 우리 글자니 가르쳐야 한다고 망발하는 자마저 포용될 수는 없다. 소위 학자라는 이가 학적 양심마저 저버려서야 되겠는가. 하기야 한글반포 당시에도 최만리 같은 진서 동맥경화증 환자가 있었으니 역사에 앞장서는 일에는 가로막는 무지가 항상 따르기 마련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