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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30 16:10
모과나무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580  
 
모과나무


날씨가 이른 봄처럼 포근하기에 뜰에 나아가 어정거리다 보니 청매 봉오리가 제법 부풀어 오르고 서향도 꽃망울이 갈라졌다. 대한이 아직 까마득한테 저토록 성급하게 서둘다가는 필시 꽃망울이 얼어붙을 것만 같아 적이 걱정된다.
서실 앞에 버티고 서 있는 호랑가시抱骨木는 금년 들어 잎새가 묻힐 정도로 빨간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서 눈이라도 오는 날이고 보면 더욱 새빨간 게 혼자서 바라보기엔 어쩐지 허전한 때가 많다.
날만 새면 찾아와서 그 열맬 쪼아 먹는 산새가 금년에는 짝을 데리고 와서 어찌나 심하게 쪼아 대는지 며칠만 그대로 두면 빨간 껍질이 소복이 쌓일 정도여서 요즘엔 눈에 뜨이는 대로 산새를 쫓아버린다.
한동안 드세게 재배하던 장미도 한물이 가신 탓인지 꺼끔하더니, 요즘엔 가는 데마다 철쭉 재배가 유행처럼 번지게 되어 웬만한 정원이면 철쭉꽃 없는 데가 없다. 나도 유행을 따라서라느니보다 10여 년 가꿔오던 장미가 이젠 노목이 된 데다가 꽃마저 퇴화되어 소개를 시키려니 궁리하던 중이었다. 한번은 N화백의 집엘 갔더니 심은 지 50 년이 넘는다는 철쭉 꽃밭이 그대로 길이 넘는 철쭉 숲인 데 놀랐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온 집안이 철쭉꽃 속에 파묻혀버린 것만 같아 참으로 황홀할 지경이었다. 그 길로 돌아온 뒤 여러 번 궁리하던 끝에 그해 가을 그예 장미를 깡그리 소개시켜버리고 줄곧 4·5년 동안 구해다 심은 철쭉이 이젠 20여 종이 넘게 되었다. 아직 어린 나무이긴 하지만 제법 눈부신 철쭉밭이 되었다.
자산홍은 그 무렵에 구해 심었지만, 영산홍은 귀하기도 하려니와 요즘엔 종자로 낸 것이 흔해서 제 빛깔 내는 놈을 구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좀 큰 것을 구하자면 워낙 값이 높아 오래 망설이다가, 작년 봄에 광주 갔던 길에 사직공원에서 내려오는 다리목 꽃가게에서 비싼 값이었지만 무심코 사가지고 왔으니 철쭉과의 왕자를 모신 셈이다.
철쭉 철이 지나고 보면 꽃이 가장 드문 6·7월인데도 두 그루의 태산목이 백모란의 뒤를 이어 두 달 동안은 매일같이 탐스럽게 피어나, 그윽한 그 꽃향기에 묻혀 산란한 마음을 족히 달랠 수 있기에 누항에 묻혀 살되 자위할 때가 많다.
정원이라야 겨우 40평 남짓한 비좁은 면적에 10여 년 동안 봄가을 철만 되면 닥치는 대로 심어 놓고 보니 이제는 초만원이 되어 더 욕심을 부릴 수는 없는데도, 여러 해를 두고 벼르고 벼르던 모과나무 한 그루만은 꼭 심으리라 작정하고 작년 가을에는 왜막실이라는 마을을 찾아갔다.
그 마을에 가면 손쉽게 모과나무를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무작정 나섰던 길이 이십 리가 짱짱한 노정이었다. 그러나 마침 마을 어구에서 그 마을 사람을 만나 온 뜻을 말했더니, 예전엔 여러 그루 있었는데 부중(전주 시내를 가리킴) 양반들이 샅샅이 드나들면서 모조리 사 가버리고 이젠 없다는 이야기에 맥이 풀려 허탕을 치고 돌아왔었다.
지난 가을 우연히 K형과 같이 실로 7·8년 만에 기린봉에 올라갔다가 오는 길에 약수터 옆에 있는 강 처사姜處士 노인이 문득 생각나서 찾았더니 그 아들 이야기가 3년 전에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강 처사는 옛날 독립운동을 하다가 오랜 방랑 끝에 기린봉 기슭 약수터 옆에 자리 잡고 여생을 보내고 있는 분이라고 들은 이야기가 있어 기린봉엘 오를 때엔 자주 만났고, 17·8 년 전에 C의 동시집 <무지개>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의 집 뒷방을 빌어 몇 친구들과 맥주로 밤을 지새운 뒤부터는 퍽 친숙하게 알고 지내던 노인이다.
그 뒤 매일 K형과 나는 아침 산책을 약수터로 정하고 기린봉 중턱을 오르내리며 강 처사의 아들과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고개를 넘어가면 제법 파도처럼 밀려오는 송뢰松籟 소리에도 귀가 익게 되었고 나뭇가질 옮아앉는 산새 떼도 자주 볼 수 있는 산책길이 되어서 하루만 걸러도 종일 꺼림칙하게끔 되었다.
하루는 강 처사 집 아랫길을 내려오다가 산수유나무 옆에 서 있는 모과나무에 눈이 번뜩 띄었다. 크기도 크려니와 나무 모양새가 어찌나 곱게 빠졌던지 K형과 나는 그 길로 되짚어 강 처사의 아들을 찾아가 그 모과나무를 양도할 수 없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교섭을 벌였다.
선선히 승낙하면서도 값은 마음 내키는 대로 내도 좋다는 이야기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선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값은 치르고 가져왔지만 강 처사의 풍모를 역력히 찾아볼 수 있어 더욱 마음 흐뭇했다.
저 모과나무에 황금덩이 같은 노란 모과가 주렁주렁 열리면 모과주를 그득히 담가 놓고 오늘처럼 백운이 자욱이 내리는 날이면 K형과 더불어 강 처사의 아드님도 불러 마른 전복이라도 안주삼아 창 너머 모과나무를 바라보면서 잔을 기울이리라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