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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23 15:33
마음의 광장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143  
 
마음의 광장

1. 나는 배신자가 되고 싶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무서워하게 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을 요즈음 새삼 깨닫게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이 배신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자에게 친구에게 또는 둘도 없는 동지에게 배신의 독배를 마시게 될 때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의 일부분을 상실하는 것과 다름없는 커다란 상처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 배신의 누적일는지도 모른다.
배신을 당하기 전 말하자면 그런 불순한 경험이 내 정신세계를 침식하기 전까지 나는 서로 믿고 사랑하는 것을 내 생활의 신조로 여겨온 것만은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내 험한 연륜에는 여러 종류의 상처가 잔금을 그었지만 그 중에도 가실 수 없이 무참히 그어 놓은 금이 아마 배신의 소작 일시 분명하다. 하기야 성웅 간디에게도 끝내는 탄환세례를 입혀야 하는 무지한 배신자가 있었으니 신숙주의 배신쯤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해방 후 이 나라에서도 위대한 애국자들이 얼마나 많은 배신자의 총알에 꺼꾸러졌느냐 말이다.
나라를 경륜하는 데 오는 배신은 그대로 역사를 거역하는 자들의 무지한 폭력에서 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역사가 역전한 예는 없는 것을 어찌하랴? 태양이 부질없이 돌아가는 것이 아닌 한 골고다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피는 그대로 멈춘 것이 아니요 독배를 태연히 든 소크라테스의 숨이 또한 그대로 거두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찌 사탄에게 이 지구덩이를 맡길 수 있으며 소피스트에게 학문이 유린 당할 수 있을 것인가? 골고다에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던 날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던 날 그날만은 사탄의 것이었고 그날만은 소피스트의 것이었을는지 모른다. 십자가에 못 박히던 그 날의 그리스도나 독배를 마시던 소크라테스나 담금질을 당하던 그날의 성삼문도 아마 내심으로는 ‘내일은 우리의 것이다’고 부르짖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배신자의 날은 오늘에 한정된다. 물어보라, 그들은 ‘오늘은 우리의 것이다’고 장치고 초치고 하였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역사는 오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항상 오늘의 다음에 오는 내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배신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리라. 오늘의 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감행하는 배신이 있는가 하면 어제의 배신을 호도하기 위한 배신도 있다. 한 몸의 영달을 위하는 배신도 있을 것이요 한 가족의 안일을 위해서 저지르는 배신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세상에서는 흔히 불의의 예금통장과 불의의 전장을 선망하는 나머지 가장 능란한 생활자는 가장 능란한 배신자라고까지 착각하는 불행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번영을 위해서 나아가서는 전 인류의 영화를 위해서 배신을 할 수 있는 그런 인간상을 나는 보고 싶다. 인류의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저지를 배신자가 어서 나와 주었으면 싶다는 말이다.
이런 위대한 배신자가 오늘처럼 절실히 대망되는 세대가 또 있을까? 그러기에 나는 사회적 문화적 개인적 배신자에 대한 증오라거나 치사스런 보복을 단념하는 대신 내 자신이 위대한 배신자 되기를 꾸준히 노력하고 싶을 따름이다. 우리들 영원한 행복과 신의를 위해서.

2. 부재자의 착각
세상이 노상 즐거워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요 즐겁게 살아보자는 꿈이 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숱하게 길을 걸어가는 그 많은 사람을 붙들고 얼마나 즐거워서 사느냐고 물어보라. 즐거워 산다는 친구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마 이런 대화는 천국에서나 주고받을 일이다.
요즘 시중에 볼일이 있어 나오면 틈틈이 다방엘 가게 되고 다방엘 나가면 낯익은 친구들의 악의 없는 얼굴을 대하게 되고 서로 마주앉으면 두서없는 이야기로 웃음을 나누게 되는 것도 싱겁지 않아 어느 듯 B다방의 단골손님이 되다시피 발이 익었다. 인젠 보살필 일을 끝내기 전이나 끝낸 뒤에는 으레 한 번씩 그 다방을 둘러오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그렇게 즐거운 세상은 아닌데도 제법 안도감을 얻는 것이 좋다.
그대로 앉아서 음악을 듣는 것도 한 재미려니와 주고받는 이야기의 소재가 어느 정도 끝날 무렵이면 약속이나 한 듯이 친구와 더불어 선술집 검은 포장을 제치고 들어가 대포 한 잔쯤 가볍게 나누고 거나한 속에 노송동 마루턱을 올라오는 것도 과히 싱거운 일은 아니다.
이런 땐 P와 어울려야 더욱 격에 맞는다. 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B다방에서 흐뭇이 쉬고 친구와 검은 포장집에 가는 도중에 오랜만에 한 친구를 만났다. 내가 채 묻기도 전에 하는 말이 ‘같잖은 놈의 세상 도둑놈만 우글우글해서 두문불출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보내놓고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도 그가 나에게 불쑥 던지고 간 그 한 마디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의 유아독존에 가까운 고고를 높이 사기에는 나의 실낱 같은 자존이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을 한 번 따져 보았다. 그의 현주소가 확실히 수양산이 아닐 바에야 그의 말마따나 같잖은 세상의 한 구석인 게 분명한 일이니 도둑이 득실거리는 바로 그 속에 그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듯이 남들이 또한 자기를 그렇게 생각하리라는 것을 모른다면 확실히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까마귀 속에 끼워 사는 까마귀가 저 혼자 백로로 착각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어찌 생각하면 그것이 두문불출에서 빚어진 그 친구의 미덕인지는 모르지만 제 자신을 빼놓고 셈을 하고 부재자를 찾는, 강을 건너온 돼지들의 계산법을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잖은 세상과 도둑이 득실거리는 세상을 좀 더 같게 만들어보고 싶은 의욕을 갖는 것이 정상일 것이니 그렇게 해야 이 세상을 좀 더 올바른 길로 나아가지 않을 것인가.

3. 독자와 필자
평생을 두고 서투른 대로 시를 써오고 있지만 독자들로부터 이렇다 할  편지 한 장 받아본 일이 없다. 그렇다고 무슨 흥미진진한 편지를 받아보자는 것도 아니다. 어찌 생각하면 사이비 평론가의 격화소양적隔靴搔癢的인 허튼소리보다는 그저 애독했노라는 편이 차라리 함축성이 있어 좋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독자들의 반응이 있어야 신이 나고 자극을 받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소설가들에게 제발 그 주인공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한다든지 어찌 그 주인공을 죽였느냐고 마치 잔인한 살인마나 대하듯이 앙탈을 부리는 차원 이하의 과잉반응은 오히려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겠지만….
이미 타계한 소설가 R씨는 데뷔 후 창작집을 냈는데도 그 누구 한 사람 거들떠보는 이가 없어 지나친 무반응에 한때 자살을 기도했다는 웃지 못할 유명한 일화가 있거니와 저 대문호 위고 역시 힘들여 써낸 작품에 독자들의 반응이 없자 신문에 익명으로 악평을 하여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물론 쓰는 작품이 본질적으로 무비명작無比名作이 되라는 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역작이고 보면 그 언젠가는 햇빛을 보게 마련인데, 독자의 반응이 없다고 자살을 기도하거나 혼자 깎고 붙이는 자발을 떨기 전에 반성하고 각고의 노력이 선행되는 데서 작가의 올바른 정신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연전에 어느 신문에 짧은 산문을 6·7 회 발표했더니 같은 신문에 내 글을 놓고 독자들끼리 논쟁이 벌어져 꽤 흥미를 느낀 적이 있다. 물론 나는 나대로 글의 장단長短은 막론하고 붓을 든다는 데 보다 두려운 책임을 느꼈지만….
「천자춘추千字春秋」에서도 그런 독자가 있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뜻밖에도 애독했다는 간곡한 전화가 걸려오는가 하면, 나의 대상이 특정인이 아닌데도 자괴지심自愧之心에서 말한다는 뚱딴지같은 전제하에 달갑지 않은 전화가 걸려 와서 흥미보다는 그 몰지각을 가가일소呵呵一笑에 붙였지만 한편 생각하면 충실한 반응임에는 틀림없을 것도 같아 그런 대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4. 마음의 광장
생각하면 광장처럼 너그러운 곳이 없다. 거지도 장관도 지게꾼도 신사도 숙녀도 아니, 흑인도 백인도 황색인종도 아무런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곳이 광장인가 하면 조막손이도 절름발이도 애꾸눈이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곳이 바로 광장이니 말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면 어디나 없이 광장이 마련되는지도 모른다.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마련되는 이 광장은 뜻 깊은 날에는 으레 모여서 그 날의 행사를 치르게 되고 주먹을 휘두르며 절규도 서슴지 않는다.
일찍이 독립선언서를 우렁차게 반포하고 일제에 항거하던 기미 3월 1일의 독립운동도 바로 파고다공원의 광장에서 시작되어 끝내는 이 나라 모든 광장으로 번졌던 것을 생각하면 광장처럼 고마운 곳은 없을 것이다. 어찌 그뿐이랴? 불의에 항거하는 함성을 울리면서 경무대(지금은 청와대로 바꿨지만)로 몰려가 주인을 갈아치우던 4·19도 서울역 광장에서 시작되었으니 역사를 창조하는 곳도 바로 광장인 것이다. 광장이 없는 정치 광장이 없는 문화는 있을 수 없으리라 .그러기에 독재자들은 이 광장을 무서워한다. 더구나 광장에 모이는 군중을 더 무서워한다.
한때 광장의 집회를 불허하였기에 남산으로 한강백사장으로 전주천변으로 새로운 광장을 찾아 군중은 그들의 뜨거운 가슴을 터뜨렸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렇다. 광장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올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광장이기 때문에. 그러기에 마음의 광장을 설치하기란 더욱 어렵지만 긴요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