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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21 14:47
추과秋果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307  
 
추과秋果

1. 밤
숲 속엔 낙엽의 구르는 여운이 맑고
투욱투욱 여문 밤알이
무심히 떨어지노니

언덕에 밤알이 고이 져 안기우듯이
저 숲에 우리의 자그만 이야기도 담겨

때가 먼 항해를 하며 오는
날 속삭이기 위한
아름다운 과거를 남기지 않으려니?

내 초라한 서재 앞에 서 있는 낙우송 푸른 가지 사이로 기린봉을 넘어 흘러가는 짙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디라 없이 훌쩍 뛰쳐나가 물소리라도 듣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슴 깊이 느껴 오던 희열과 풀길 없는 격정을 주체할 수 없어 산과 들을 무작정 쏘다니던 것은 아득한 옛날이다.
불현듯 달려가고 싶은 산, 달려가서 그 고요한 품 안에 담쑥 안겨 보고 싶은 심정, 이를 어찌 참을 길 없이 치밀어 오는 연정에만 비기랴? 너무나 처절하고 너무나 남루한 인생을 살아오는 까닭만도 아닐 것이다.
속정에 허덕이며 숨 막히는 속에서 그래도 때로 바라보는 산에서 얻어 보는 법열마저 내게서 고스란히 앗아간다면 가쁜 숨길을 어디로 돌려야 할 것인가? 그러기에 나는 자주 찾아갈 수 없는 산을 망각할 길이 없어 창 너머 낙우송 사이로 겨우 내다보이는 기린봉을 이렇게 때때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기린봉을 마주하고 앉아 일찍이 한라산 백록담 마소 옆에서 서성거리던 나를, 설악산 등산길에 머루주를 들이키며 산비에 함초롬하니 젖던 나를, 지리산 반야봉에서 이가 시린 물을 마시며 짐승처럼 쏘다니던 나를 생각해내곤 하는 것이다.
추분를 지내고 보면 저 모악산 기슭이나 고덕산 계곡에 머루 다래 얽힌 속에 산대추 볼을 붉힐 것이요 밤송이도 고동색 알맹이를 지그시 문 채 바람에 흔들릴 것이다. 그 무렵엔 우리 안사람과 어린 손주를 데불고 저 남고산성이라도 찾아가 산밤이라도 주우며 남은 날을 위하여 속삭일 수 있는 아옹다옹 과거를 마련하리라.

2. 감
물밀 듯 다가오는 따뜻한 이 가을에 붉은 감빛 유달리 짙어만 가네.
오늘은 저 감을 또옥 따며 푸른 하늘 밑에서 살고 싶어라.
감은 푸른 하늘 밑에서 사는 붉은 열매이어니.

일찍이 파피니Giovanni Papini는 인류 발전의 역사를 3 개의 능금으로 상징된다고 말했다. 에덴동산의 능금과 빌헬름 텔의 아들의 머리 위의 능금과 뉴턴의 능금이 그것이다. 제1의 능금은 인류의 지성의 눈을 열었고, 제2의 능금은 인류의 자유에의 해방을 의미하고, 제3의 능금은 자연계의 삼라만상 일월성진의 운동을 지배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물리학적으로 인류에게 일러주었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이야기다. 그러나 에덴동산이 우리 고장에 있었고 실러와 뉴턴의 고향이 만일 이 고장에 있었더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졌을 것이다.
지치도록 푸른 우리나라 가을 하늘 아래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감의 타는 듯한 붉은 빛깔을 파피니가 보았다면 세 개의 능금보다는 세 개의 감으로 이야기는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정골射亭里 파라시早紅柿의 쌈빡한 맛은 전주 팔미로 이름이 높거니와 고산수시高山水柿의 가슴이 서늘한 감칠맛이라거나, 변산먹시邊山墨柿의 두메 색시같이 수뚜름한 맛도 맛이려니와 그 말긋말긋한 빛깔은 대구의 국광이나 황주의 홍옥에 비길 바 아니요 저 세잔의 능금에서도 아예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 오늘도 저 빨간 감을 또옥 똑 따며 푸른 하늘 밑에 살고 싶은 마음은 예나 다를 바 없다.

3. 석류
마실 간 집 양지 끝에
고양이 졸음 졸 때
울 밑에 석류 알이
소리 없이 벌어졌네.
투명한 석류 알은
가을을 장식하는 홍보석이어니.

누구와 저것은 쪼개어 먹으며
시월 상달의 이야기를 남기리…….

폴 발레리의 석류도 좋고 지용의 신라 천 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는 석류도 좋지만,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툼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은
내가 이어 이르리까.

보소라 !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이렇게 덤벼드는 운雲의 석류는 과연 입신의 경지가 아니고는 얻어 볼 수 없는 석류이다. 이 투박한 열매 속에 어쩌면 그렇게도 투명한 홍보석 알맹이가 총총 박혀 있는 것일까.
우거진 태산목 옆에 가꾸어 놓은 석류나무에 올 들어 석류가 소담하게 열렸다. 엊그제 내린 비 뒤에 찾아든 소슬한 바람의 탓인지 풍성히 매달린 석류가 비낀 햇볕에 낯을 붉히고 있는데 문득 깊어가는 가을을 읽을 수 있었다.
6월달 줄등 켜듯 빨간 화촉을 밝혀 신방을 꾸미던 석류가 여름 내내 입덧으로 고생을 하는가 했더니 요즘엔 아주 만삭된 몸으로 저렇게 얼굴을 붉히는 몸매도 고우려니와 그 부끄럼성이 한결 귀엽고 예쁘다. 그래 ! 10월 상달만 되면 그예 그 알알이 붉은 가슴을 풀어 헤치고 몸을 풀겠거니 생각하면 대견스럽기 그지없다.
아침저녁으로 안사람이 굽어보며 대견스러워 하는 것도 우리 생활의 버릴 수 없는 풍경의 한 토막이지만 이윽고 빠개 젖힌 열매를 따 두었다가 추야장 긴긴 밤을 한두 알 입에 넣고 눈을 찔끔 감아 보는 것도 시월상달을 좀 더 운치 있게 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계절의 여운 속에서 살아 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보는 것도 좋으리라.

4. 능금
닿으면 찌르릉 소리가 금세 울려올 것만 같은 파란 하늘. 이쯤 가을이 깊어가고 보면 거리에는 어디라 없이 풍성하게 쌓아놓은 새 과일이 눈에 띈다. 갓 따 내온 대추가 있는가 하면 서근서근 입맛을 돋울 배가 있고 새빨간 능금이 모두  한결같이 아름답다. 멀지 않아 그 고풍한 모습의 석류가 나돌 것이요 제주도 유자도 건너올 것이 아닌가.
어찌 생각하면 좀 사치스러운 이야기일는지는 몰라도 청자기에 두어 개 능금과 곁들여 유자를 담아놓고 바라보는 아취를 아는 사람은 알리다. 더구나 거기서 풍겨오는 그 산드런 향기란 어찌 태산목 꽃의 그윽한 그것에만 비길 것이냐
일찍이 발레리는 능금을 놓고 시와 사상 문제를 다루었고 세잔은 그 색조와 선에서 화필을 가다듬었는가 하면 파피니는 인류 진전의 역사는 세 개의 능금으로 상징된다고 말하고 있다. 에덴동산의 능금, 빌헬름 텔의 아들의 머리 위의 능금, 뉴턴의 능금이 그것이다.
올 가을에도 우리 선량한 시민들도 발레리의 능금도 세잔의 능금도 그리고 뉴턴의 능금도 먹을 것이다. 아니 이브의 능금을 먹을지라도 여호와처럼 설마 누가 질투야 하지 않겠지. 다만 아쉬운 것은 빌헬름 텔의 능금이다. 그의 능금을 아직 맛보지 못한 주민이 이 지구의 방방곡곡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설령 빌헬름 텔의 능금이 좀 설익었다고 해도 좋다. 아니 약간 벌레를 먹었다고 해도 좋다. 진정한 자유에의 해방이 필요한 주민에게 이런 능금이 배급될 날이 어서 와야겠기에 말이다. 생각하면 빌헬름 텔의 능금 배급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이 지구는 전쟁이란 병을 앓고 있고, 밀수입이 성행되고, 오물 소동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 빌헬름 텔의 능금이 없는 곳에 부조리라는 구더기는 날로 번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