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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21 12:07
병상수기病床隨記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188  
 
병상수기病床隨記 

1. 병상수기
봄은 떠났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여름을 느낀다. 오랜만에 뜰에 나갔더니 6월 하늘이 어떻게 짙푸른지 부신 햇살에 금이 갈 것만 같다. 14·5년을 가꿔온 정원이 어느 산모서리를 떼어다 놓은 것 같이 내가 봐도 울창하다.
밀화부리가 청승맞게 우는가 했더니 세 길도 넘는 태산목 가지마다 꽃을 달고 집안이 향기로 가득하다. 저 태산목이 한 10년만 더 자라면 우리 집 주변이 온통 태산목 향내에 젖어 살 것이다.
뺨이 유달리 흰 멧새가 6·7마리 새끼를 데리고 나무마다 돌아다니며 벌레 쪼아 먹기에 꽤 분주하다. 동박새도 새끼를 데리고 역시 돌아다니고 있다. 아마 금년에는 저 시나대 숲과 낙우송에서 새끼를 까나 보다. 일전에도 철쭉나무에서 비비새가 새끼를 까 나갔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새를 사다가 조롱에 넣고 키울 것도 없고 새소리를 들으려고 산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공해오염으로 세상이 떠들썩한데 아침이면 베갯머리에서 종달새도 우는 소리를 듣고 밀화부리 멋진 가락 아무데서나 들을 수 있으니 자연의 품에 안겨 사는 행복을 새삼 느낀다. 소리를 들어 동박새와 멧새와 비비새를 알게 되었으니 이들과 한 10년 사느라면 그들 회화도 알아듣게 될 것이다.
오늘은 피부에 닿는 바람결이 그대로 늦가을이다. 6월 하늘도 청자빛처럼 금시 금이 갈 듯 그 빛깔이다. 구름은 청자 항아리를 펴고 한가히 떠간다.
유삼아, 먼 뒷날 내가 죽으면 어느 양지 바른 곳에 묻고 이렇게 오늘같이 맑은 날 너희 어린놈을 데리고 내 무덤가에 가서 청자 항아릴 베고 떠나가는 구름을 볼 일이요, 황혼이 들면 내 이야기를 하면서 집으로 돌아갈 일이다.
새처럼 천후天候에 민감할 수도 없다. 그렇게 멋진 가락을 뽑는 밀화부리도 햇볕이 음산하고 바람이 쌀쌀하면 영 입을 다문다. 햇볕이 끄무레하고 파초 잎에 몇 방울 비가 지내더니 뜨락에 씻은 듯이 새소리가 멈추었다.
결국 시인도 한 마리 새에 불과하다. 해가 있는 한 새가 노래하듯 시인도 풍요한 정치 경제가 보장되면 멋진 가락으로 노래 부를 것이 아니냐.  이제 새는 좀체 노래 부를 성싶지 않다.

R의 대금大琴을 듣자. 대금은 그 소리도 치웁지만 막아낼 수 없는 비극을 몰고 온다.

석류꽃 붉은
6월 하늘을
밀화부리 울고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비극을
무엇으로 달랠까?
차라리 비극을 동반하는
대금 소리로라도
가슴을 꽉 메꾸고 싶다.
­「대금소리」

뜨락에서 멧새와 동박새가 분주히 우는 것을 보아 날은 깨어나나 보다. 좁은 서실 여닫는 날마다 태산목 꽃 핀 지가 얼마나 되었기에 향기가 밀려오는 것일까. 내 무덤에도 차가운 돌비를 세우지 말고 태산목을 한두 그루 심어 달라 부탁하리라.

찔레꽃 향기가 달려드는
6월은
온 천지가 녹색침대에서
 잠드는 시절

짙푸르름 속에 묻혀 사는
푸른 산자락을

양떼 같은 구름
넘어 가고

무두룩히 고갤 든 보리밭에선
초록색 파도가 일고
비 든 뒤 한가한 꿩들의
한가한 소리가 초록색 이랑을 타고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들의 꿈이 넘나는
청자빛 산자락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피잉 돌았다

이 글은 <소년중앙> 6월호에 발표한 내 근작의 전문이다. <소년중앙>이 내게 오기도 전에 어린 독자들의 편지가 날마다 왔다. 병상에 누웠다는 편집자의 주를 읽은 탓인지 하루 빨리 완쾌하셔서 우리들을 위해서 좋은 글을 많이 써주시라는 간곡한 부탁이 씌어 있었다.
맨 처음에 온 4·5명에게는 답장을 했는데 그 뒤 계속해서 보내온 편지는 답장을 아직도 못했다. 여간 마음이 꺼림칙한 게 아니다. 2·3 일 내로 꼭 답장을 해야겠다. 병상에서 받아보는 편지는 반갑지만 그중에도 어린이들에게서 온, 정이 철철 흐르는 ‘할아버지’라는 서두부터 읽어보면 내 소년의 꿈을 키워준 잊을 수 없는 고향 부안의 서해 파도소리가 금시 귓전을 스쳐 밀려왔다 밀려가곤, 갑자기 어머님 생각이 나서 코끝이 찡하다.
하루가 한 10년만 같이 지질한 이 여름날, 어서 빨리 일어나야지.  일어나서 어머님 산소도 찾아보고 한가한 꿩 소리도 들어야지.
기린봉 밑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창 밖에 반짝이는 동백잎과 태산목 향기 짙은 속에 6월도 떠날 차비를 하는 속에­.


2. 병상의 이 여름
이 여름철 어떠한지. 내소사의 전나무 숲과 청련암의 저녁 종소리가 병상에 누운 지 어느 덧 6개월이 가까워온다. 반년의 세월을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과 벽에 갇힌 채로 내 병과의 피눈물 나는 맞버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한 주 동안은 혼미한 의식이었고 차츰 의식을 되돌려 가지면서부터는 내 주변 사람, 또 문우들, 또 원근의 인정들에 사뭇 눈시울을 적셔내고 있다. 특히 천릿길을 나 하나 보려고 왔다가 내 잠길을 설칠세라 되돌아간 문우들의 이야기를 뒤늦게야 들으면서 나는 그 정에 목메어 소리 없는 오열을 짓기도 그 몇 번인지를 헤아릴 수 없다.
2개월 또는 3 개월, 4개월이면 일어서게 되리라는 병상을 지켜주는 내 집 아이들의 이야기였지만 나는 6개월이 다 되는 지금도 기동의 자유를 얻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내 뜰안의 목련도 철쭉도 제철을 피었다 지는 동안 꽃밭을 가꾸는 데 손질 한 번을 넣어 보지 못했다. 오직 창 너머로 때로는 부축을 받아 뜰 앞의 의자에 내앉혀서 지는 목련 꽃잎을, 벙글은 태산목 꽃을, 회사하게 핀 철쭉꽃들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꽃철도 가고 이제 내 뜰은 온통 푸른 물감을 흩뜨려 놓았다. 그 중에 빼어 솟은 백련의 꽃대가 몇 봉의 탐스러운 꽃 봉우리를 달고 있다. 이 푸르름 속 햇볕이 내려 쬐고 푸른 잎들이 깐딱도 하지 않는 한낮이면 나는 내 병상에 닥칠 여름의 고문에도 여유 있게 대응할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본다.
무슨 신통한 묘안이 선뜻 떠오르지는 않는다. 비어홀에서 백주나 실컷 마시든지 한벽당 냇가에 발이라도 정구어 놓고 천어에 막걸리라도 마시거나 아니면 내 고향 변산 해수욕장이라도 훌쩍 떠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척서경滌署境이겠지. 그러나 이러한 일이란 지금의 나에겐 실로 천당보다 아득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병석에 눕기 전만 해도 나는 여름철 찌는 더위 속에서의 오수란 그대로 고역이라기보다 고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기에 나는 여름이 그 고문의 굴레를 덮씌우려 하면 오히려 그 굴레를 헤쳐 거기서 빠져나와 가까운 산이나 바다로 내닫곤 하였던 것이다. 60의 고비를 넘어서만 해도 고군산열도의 선유도로 변산 해수욕장으로 제주도의 한라산 또는 강원도 설악산으로 여름 한철을 번갈아 달려갔었다. 그러나 이제 이 여름의 굴레를 나는 병상에서 차분히 또 고분고분 달래 넘겨야 한다. 아무리 여름철의 한더위라 하더라도 내 좁은 정원을 아침저녁 좀은 살랑여 줄 바람과 한낮에도 몇 줄금 지나갈 소나기와 저 너머 멀리 흘러가는 몇 조각 구름으로 내 꿈과 소년과 청춘을 회상하며 내 병상에 닥쳐오고 있는 이 여름의 고문을 나는 실로 느긋이 다스려 내리라.
내 정원의 한 구석을 가려 주던 시누대가 이젠 길이 훨씬 넘었고 내 병실 바로 앞에 자리 잡은 호랑가시나무도 추녀를 넘어 성근 가지 사이로 멀리 흘러가는 구름이 오늘도 나의 좁은 시야를 서느럽게 하여 주고 있다.
이 풍치는 지난날의 내 메마른 시상을 돋우어도 주었고 또 때로는 살벌한 세속과의 거리감을 주기도 하여 나에겐 적지 않은 위안과 즐거움이 되었다. 호랑가시나무를 내 고향 변산에서 옮겨온 지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시누대를 내 옛집인 청구원에서 옮겨온 지도 벌써 십사오 년이 넘었나보다.
이것들과 더불어 나의 고향을 생각하면 병상의 나의 여름철도 심심치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쯤 청구원 서편에 우거진 시누대밭에서는 비비새가 새끼를 쳐 나갔을 것이요 아름드리 은행나무 높은 가지에 지금쯤 때까치가 집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나는 내 첫 시집 <촛불>을 엮었고, 거기 담긴 그 꿈같은 노래도 청구원 주변의 산과 구름과 멀리 서해의 간지러운 해풍이 볼을 문지르고 지나갈 때 얻은 꿈조각들인 것이다.
변산도 겨우 해수욕장을 앞에 내세우고 관광 포스트로 손을 까부는 지금의 변산이 아니고 내 젊은 철 그 울창한 밀림으로 지척을 분간할 수 없던 심산유곡의 변산을 생각하리라.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으로 자랑삼던 직소폭포의 수원水源은  변산의 산자락에 울려 퍼지고 월명암의 낙조가 서해를 물들일 무렵의 파도소리가 그립다.
해안선을 달리는 바다 풍경이 동해안만이야 못하기로서니 채석강 또한 눈앞에 어려 든다. 그 책상바위의 기암괴석과 더불어 백사에 깔려 물속에 빛나는 그 영롱한 채석이야말로 동해에서 구경할 수 있으리오.
오색이 영롱한 그 채석을 탐승가마다 그저 호주머니에 넣고 가기가 일쑤니 어느 해 여름밤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어부가 외던 시 한 구절을 이젠 잊어버리고 다만 ‘採石江石兩袖鳴채석강석양수명’이란 한 짝이 떠오를 뿐이다. 돌이 양편 소매 속에서 울다니 그도 채석을 무척이나 좋아했던가 보다.
나도 일찍이 주워다가 내 책상머리에 놓고 보았던 채석을 큰애를 시켜 가져오게 하여 오른손으로 꼭 쥐어 본다. 채석강 바닷바람이 내 온몸을 서느러히 철썩여 주는 것만 같다.
창밖으로 눈을 보낸다. 병상의 오늘도 어젯밤 비로 씻긴 시누대 잎이 바람에 나부낀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에 묻힌 호랑가시나무에도 자르르 윤이 돋아 흐른다. 이것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조만간 돌아가야 할 내 고향을 생각한다. 그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을….
버리고 온 생활이여
나의 벅차던 청춘이
아직도 되살아 있는
고향인 성싶어 밤을 새운다.

병상이어도 나는 이러한 나의 고향과 또 나를 생각해 준 나의 원근 교우들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 여름철도 괴롭거나 외롭지 않게 견디어 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