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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10 14:28
촛불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930  
 
촛불

1. 촛불 켜기 전
언제나 황혼은 이 마을 서편에 있는 묵은 산장 밤나무 숲에서 걸어 나온다. 상소산에서 넌지시 내려온 산줄기가 묵은 산장을 병풍처럼 휙 둘러 황개재라는 작은 재가 되고, 나직한 황개재 너머로 푸른 하늘이 가로 길게 눕고, 그 하늘에 능금 빛으로 붉은 저녁놀이 삭은 뒤에야 황혼은 겨우 그 재를 넘어서 밤나무 숲을 거쳐 우리 마을을 찾아오게 된다.
시인 편석촌은 ‘산골짜구니에서 밤은 새벽을 음모한다.’고 어느 시에선가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 황혼은 저 황해를 넘어가버린 대낮이 음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장차 황해를 건너올 밤이 음모한 것일까? 하고 때로 생각되나, 밝고 또 그 성격이 명랑하고도 대담한 대낮은 황혼을 음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낮이 황해를 넘어서 그 영토를 확장하면서 화려한 출발을 한 뒤, 밤은 그 뒤를 무난히 기어오기 위하여 아마 황혼을 음모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시인의 아름다운 꿈이요, 어쩌면 인간의 병적 사고방식일 것이다. 해가 산과 바다를 넘어간 뒤 황혼과 밤이 오고 또 새벽이 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자연의 질서요, 결코 음모도 추방도 아니므로 왜? 하고 다시 더 긴 부연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감수성이 풍부하고 민감한 시인이라는 종족들은 불행한 일인지 다행한 일인지는 몰라도 철인의 심오함은 있을지언정 과학자처럼 냉정한 합리주의자들은 아니다.
계절과 계절이 옮길 때처럼 그들은 황혼에서 밤에서 또 새벽과 대낮에서 늘 현묘한 감흥을 일으키고 또 법열을 느끼는 것이다. 그 경계는 아무도 모른다. 안다면 그것은 같은 종족의 시인일 것이다. 그러므로 저 도홍경陶弘景이 ‘山中何所有산중하소유 嶺上多白雲영상다백운 只可自怡悅지가자이열 不堪待贈君불감지증군(산에 묻혀 살자니 무엇 있으리 고개 너머 오고가는 흰 구름인데 내 홀로 즐기며 살아가자니 그리운 그대가 생각날밖에)’이라는 법열경에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신선이라 불렀던 것이다. 확실히 시인은 날개 돋친 종족들이다. 일상생활의 작은 사실의 속박에서 또는 개인적 관념의 좁은 한계를 떠나서 언제나 자유로운 그리고 무한한 우주를 순례하는 날개를 가졌다. 이것은 저 타고르도 일찍이 말한 일이 있다.
그러므로 시인이 아니고는 황혼과 밤의 조용한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또 황혼에 먼 산의 명상하는 조용한 얼굴을 볼 수도 없고, 밤이 새벽을 음모하는 것까지도 보지 못할 것이다. 시인의 행복은 실로 여기 있을 것이다.

산림처럼 평화하고 호수처럼 정밀한 황혼의 성스러운 얼굴이 창문에 어른거린다. 그의 부드러운 손길이 나의 이마와 머리를 쓰다듬는다. 지금 저 남쪽 하늘 밑에서는 늙은 산들이 주름잡힌 턱을 괸 채 명상에 잠겨 그대로 또 밤을 맞이할 것이다. 나도 어서 내 일과를 비롯할 때가 되었다. 벽에 걸린 키츠의 청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또 수반에 말이 없는 수선화를 바라보면서 일찍이 레오 발지가 사랑한 철인哲人 아마릴리스처럼 인생을 명상하자. 이윽고 촛불을 켤 때까지….
2. 촛불을 켤 때
책장 위에 놓인 난초 잎새가 추욱 처진 게 흡사 절정에 뿌리박은 난초와 같고, 책상의 수선화 움이 수묵색으로 해변의 돛대처럼 쭝긋쭝긋 멀어져 가고, 서편 문 옆에 둘러놓은 병풍은 마치 해안의 작은 소나무 덮인 나직한 언덕이 밤안개에 사라져가듯, 좁은 방안의 이 모든 물체가 내 시야에서 멀어 갈 임시해서 나는 촛불 켤 준비를 한다. 밤이 오기 전, 그리고 황혼이 떠나기 전같이 내 작은 방안의 풍경이 가장 절경絶景일 때는 없다. 이 풍경들이 사라질 무렵에 나는 촛불을 켠다. 그러면 갑자기 이것들은 나를 다시 찾아와서 내 앞에 전개된다. 황혼의 명상이 내 생활의 큰 일과이듯이 촛불을 켜는 것도 밤의 큰 일과인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전기의 혜택(?)을 입기에는 아직도 시일이 먼 촌에 사는 탓으로 이렇게 행복 된 시간이 있나 보다. 그러므로 나는 가끔 딴 걱정을 할 때가 더러 있다. 혹시 이 마을의 근방 산에서 의외로 요즈음 흔한 크나큰 금광이나 발견되어서 보기에도 흉한 움집이 늘고 전선을 늘이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그때에는 결코 나는 이 마을을 떠나야 할 괴로움이 있다느니보다 떠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는 촛불을 켜는 나의 행복된 일과는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전기에 짓밟혀가면서까지 홀로 촛불을 켠다면(못 켤 바는 없겠지만) 그것은 서울 복판에 앉아서 초가집을 지키고 램프를 켜는 것 이상의 것이 못 될 것이다.
시인의 기도라는 것이 반드시 정신적인 것보다도 어떤 때는 순수히 미각적일 수도 있어서 쓰고도 달디단 입맛을 다신다고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나도 시각을 통한 촛불로 하여금 정신이 맑고 조촐해지는 것보다는 어느 때에는 새 입맛이 도는 듯 신선한 것을 느끼는 때가 많다.
더구나 촛불은 전기나 석유불처럼 죽은 불이 아니다. 가벼운 바람이 방안을 스칠 때마다 촛불을 예민하게도 흔들 줄을 알고 연방 녹아갈 때 침정沈靜한 송림松林에 들어선 듯 그윽한 냄새도 난다. 그러므로 가장 인공적인 것 중에서 가장 자연스런 것이 촛불인가 싶다.

그런데 촛불이 가는 곳은 모두 송림처럼 침정한 곳이다. 부처님 앞에 놓인 촉대의 촛불이 그러하고, 가장 조용한 중에서 거행되는 우리 선대先代의 제삿날 밤이 그러하다. 심원한 사색의 밤이요, 거룩한 슬픔의 밤이 아니면 촛불은 놓이지 아니한다.
나는 어디선가 두옹杜翁(톨스토이)의 서제 사진에서 촉대에 켜다 남은 촛불이 녹아 내려앉은 대로 촉대에 꽂혀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촛불을 켤 때마다 나는 두옹杜翁의 서재의 촉대가 생각나고 이어서 허연 늙은이가 촛불을 켜고 앉아 밤 늦도록 무엇을 하였을꼬? 하고 생각해 본다. 그는 촛불 아래 앉아서 <부활>을 구상했을는지도, 또는 집필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만년의 비장한 출가를 결의했을는지도 모른다. 그 촛불 아래 앉아서….
인생에게는 두옹杜翁의 비장한 출가 이상으로 거룩한 슬픔의 종막을 내릴 밤이 남았다. 어서 나도 심원한 사색을 쌓자. 저 촛불 아래 앉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