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양 꽃밭을 어정거리고 일초일목一草一木에 마음 가는 때가 늘어가면서 나는 스스로 늙었음을 깨닫는 때가 많다. 어찌 생각하면 소란한 세상을 되도록 멀리 하고 싶은 심정에서 온 버릇인지도 모른다. 심은 지 30년이 넘는 내 고향 구거舊居의 은행나무는 벌써 한 아름이 넘는 데 놀랐다. 문득 아내에게 “그 은행나문 인젠 내 관목이 되겠던데……” 하고 이야기했더니 심히 못마땅한 눈치였다. 어찌 그런 매정스런 말을 하느냐는 핀잔 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죽음에 대해선 담담한 심정이 아닌 것 같다.
철 따라 나무를 옮겨 심고 가꾸고 보살피고 때로는 나무와 나란히 서서 키를 견주어 보기도 하고 꽃과 열매를 유심히 바라보다가도 이 나무가 어느만큼 자라고 보면 나도 그림자를 거두게 될 것이며 내 떠난 뒤에도 이것들은 쉬지 않고 성장할 것을 생각할 때 갑자기 엄습하는 고독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꽃이 피고 이울 때 말이 없듯이 이렇게 꽃 옆에서 살다가 꽃처럼 떠난들 무슨 회한이 있으랴 싶어 차라리 이것이 꽃에서 배운 미덕이라면 미덕일 것이요 자연의 섭리고 보면 구태여 생사일여니 생사초탈이니 하는 것은 속된 군소리가 아닐 수 없다.
구지레한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고 청정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꽃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바라보고 보살피는 시간이 나에겐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마치 어린 손주의 볼기짝을 또닥거리는 푼수는 된다고나 할까.
오늘도 뜰에 나가보니 3년 전에 접목한 청매에 꽃이 제법 맺었고 작년에 구해 온 백모란도 분명 두 송이는 꽃을 볼 것 같고 태산목은 두 그루에서만도 대여섯 송인 염려가 없을 것 같다. 그 밖에 라일락·구골·후박이 다투어 피어날 봄을 생각하며 나는 이 겨울을 살고 있다.
아무리 쌀가게의 외상값이 밀리고 아내의 연탄 타령이 귀 시끄럽게 들려도 연래의 숙망인 난 한 분만은 안두案頭에 꼭 구해 놓고 싶다. 빈한 속에 가끔 절화絶火를 하던 단원은 그림을 청하는 이로부터 30 량을 손에 넣게 되자, 평소에 원하던 매화 한 분을 20 량에 사들이고, 여덟 량으로 술을 받아 친구를 불러 매화를 완상하며 잔을 기울이고, 나머지 2 량으로 시량柴糧을 구했다니, 이쯤 되고 보면 멋도 입신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풍세란豊歲蘭도 좋다. 소심란素心蘭도 좋다. 아니 건란建蘭이면 더 좋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흑산도 풍란도 좋을 것이요 제주도 한란인들 어떠랴? 난초 향기 복욱馥郁한 속에 단원처럼 잔을 기울이며 청담 청소로 해를 지울 친구를 생각한다. 멋이 있는 곳에 생활이 있고 멋이 없는 곳엔 생존이 있을 따름이다.
2
하선동력夏扇冬曆이란 말이 있다. 여름엔 부채를 선사하고 겨울엔 다음해 책력을 선사하는 것이 퍽은 생색이 났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같이 에어컨으로 냉방을 차리거나 선풍기로 땀을 긋는 일이 없으니 이들이 거의 생활의 필수품이었을 것이요, 책력 또한 절기를 따라 1년 행사의 계획을 짜던 때고 보니 그럴싸한 미풍양속임에 틀림없다. 조선 말엽까지만 해도 공조에서 부채를 만들어 재상과 궁정 관리를 비롯하여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나눠주어 단오선端午扇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영호남의 방백과 절도사 지방장관도 그 지방 특산의 부채를 궁중에 진상했다고 한다.
중국 동진조東晋朝의 명신인 사안謝安은 왕희지와 교유하여 유명하거니와 다시 뛰어난 풍류객으로도 또한 이름이 있다. 하루는 동양태수로 부임한 친구 원굉袁宏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 부채 한 자루를 꺼내 주면서 “이걸 기념으로 받아 주게” 했더니 원굉은 그 부채를 받아들자 “이 부채로 어진 바람을 일으켜 백성들의 생활을 돌봐 주겠네. 그것이 나의 최대의 목표니까……”하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부채를 주고받는 사람의 정신 구조가 이쯤 되고 보면 탐관오리 때문에 골치 앓을 백성은 없으리라. 탐관오리가 득실거리는 풍토에서는 재음미해 볼 만한 이야기다.
잠자리 날개 같은 한산세저 韓山細苧로 조촐히 차린 여인이 옥같이 희고 고른 치열을 태극선으로 살짝 가리고 이야길 주고받는 모습도 우아하려니와, 구절오십시九節五十矢의 합죽선을 가끔 폈다 접는 선비의 풍채도 또한 이에 못지않은 풍정이리라.
그 태극선이나 합죽선이 전주 산이고 보면 더 이를 데 없으려니와 선추扇錘에는 비취와 호박을 물리면 더 좋을 것이요, 옥각玉角에 십장생을 조각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운치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그 합죽선에 열두 가지 빛깔을 낸다는 묵화로 산수도를 넣었다면 깊은 산골짜기의 물소리와 더불어 숲속에 이는 청풍을 동반하기 마련일 것이니, 모터로 바람을 일으켜 살갗을 스쳐가는 선풍기의 바람에 비할 바 아니리라.
부채는 살갗을 스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시원스레 씻는 바람이고 보니 어찌 속된 에어컨이나 선풍기에 마음을 맡길 수야 있으랴?
3
세상이 열려간다는 것은 의·식·주가 새로워져간다는 것을 뜻함이요, 의·식·주가 새로워져간다는 것은 인간 생활이 편리해져간다는 이야기다. 인간 생활이 편리해져간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과학적으로 진보해간다는 것이 틀림없다. 과학적으로 진보해 가는 데 나무랄 사람이 있을 리 없으나 그 반면 우리 고유의 풍정을 날로 상실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까운 예로 일상 대하는 우리 음식물은 맛나니와 사이클라메이트로 조미가 통일되어 그 특색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고 보니 평양냉면, 개성국밥, 전주비빔밥이 따로 없고 어디서 먹으나 그게 그것이다.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고 해서 고유의 풍정을 상실한다는 것은 올바른 진보라 할 수 없다. 고유한 풍정이란 바로 그 나라 겨레의 버릴 수 없는 아름다운 전통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새로워지고 진보해도 항상 그 전통 위에 건립되는 것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조미료가 온천지에 판을 쳐도 4·50 년 묵은 간장의 그 감칠맛을 당해낼 도리가 없듯이 전통에 뿌리박은 풍정이란 바로 그 해묵은 간장의 감칠맛 같은 것이다.
‘長安一片月장안일편월 萬戶擣衣聲만호도의성(장안에 조각달 멀리 비추는데 다듬이 소리 자지러지게 들린다)’은 이내 아득한 옛이야기요 화학섬유의 등장으로 여인네들의 옷매무새마저 무너지고 보니 인젠 잠자리 날개 같은 모시 치마저고리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어찌 상실한 풍정이 그뿐이랴? 날이면 날마다 눈에 뜨이게 집 짓는 굿인데 날아갈 듯 올라가던 처마는 볼 수 없고 하늘이 낮다 하고 무작정 쌓아올리는 벽돌이고 보니 경주만이라도 고층건물로 하여금 그 짙푸른 하늘을 가로막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옴직도 하다. 날마다 올라가는 고층건물과 더불어 지붕 위를 내달리는 고가도로에 끼어 종일 햇볕 하나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와집을 볼 때마다 바라보는 내 자신마저 어느 아득한 지옥으로 떨어져 들어가는 것만 같은 서울 아닌 전주에 사는 보람을 새삼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4
중국 상인들은 아무리 거액의 상거래에도 서명 날인의 복잡한 절차를 밟는 일이 없이 상호 흥정만 끝나면 청다淸茶 한 잔으로 약속 이행의 계약을 대신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우리네의 그 복잡한 각서교환과는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다. 지평선에서 해를 맞아들이고 지평선으로 해를 보내는 그 민족 고유의 시정신이 상거래에까지 작용되었다면 나의 지나친 과찬일는지……
그렇다고 해서 우리 민족에게 시정신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용하는 범위가 미처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을 따름이다. 시정신은 문예 작품의 중핵에 그칠 뿐 아니라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에 긍亘하여 강력히 발휘되는 것이다. 시정신이 없는 정치는 목전의 사상事象에만 즉응하기에 급급할 것이요, 시정신이 없는 과학이란 다만 기록과 가설의 설정을 나열하는 데 불과할 것이다. 또한 정치에도 시정신이 작용되지 않으면 청다는 고사하고 사기를 다반사로 하는 속사정에서 벗어날 수도 없지 않은가? 확실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의 뤼브케 대통령이 왔을 때 환영파티 석상에서 한국문화를 찬양하는 것쯤이야 예의였겠지만 ‘동방에 유래한 많은 것들이 수천 년을 쌓아온 미와 선과 위대함이 우리의 언어로 충실히 표현될 때, 우리의 소망은 날로 더욱 샘솟네.’라는 괴테의 시를 읊었다는 신문 보도를 읽고, 나는 다시 한 번 정치에 스며든 시 정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뤼브케 대통령의 말에서 풍기는 멋이야말로 그대로 시 정신을 체득한 정치가의 대풍모를 십이분 발휘한 것이다. 사막에도 운하를 돌리면 면화를 생산하는 옥토가 되듯이 이쯤 시정신이 침투되고 보면 정치도 예술임에 틀림없다.
흥정으로 일삼는 정치 외교에도 시의 운하를 돌리면 이렇게 운치가 반짝이되 아예 별에 뒤지지 않는다. 무릇 정치를 할 양이면 맹자나 목민심서를 탐독하는 것도 좋지만 송강의 시조 몇 수쯤 외어두어 결코 손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와 시와 멋의 조화가 무척 아쉽다.
5
난 몰라
모시 앞섶 풀이 세어 그렇지
백련白蓮 꽃봉오리
산딸기도 한 둘씩
상그레 웃음 벙그는
소리 없는 개가凱歌
사봉師峯 장순하張諄河의 '백색부'白色賦를 뒤지다가 찾아 낸 「유방의 장章」 한 구절이다. 그 산뜻한 모시 적삼과 백련 꽃봉오리를 눈여겨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시를 읽어도 아예 그 바닥에 깔려 있는 맛이라기보다는 멋을 알 길이 없으리라.
다행히 산딸기는 어려서부터 줄곧 따 먹고 자랐고, 한 7년 전에 가람 댁에서 옮겨다 심은 백련이 올 들어 두 송이나 탐스럽게 피게 되어 백련이 부풀어 오르면 풍기는 정한 향기를 처음 알게 되었다. 한 송이 남은 것마저 보고 싶어 한라산 등반길을 연기해 놓고 친구들을 불러 매실주로 청담에 묻히던 일이 새롭다.
모시적삼 앞섶이 풀이 세다는 것은 애교로 들어 좋은 핑계요, 개화 직전의 백련 꽃봉오리처럼 부풀어 오는 가슴을 요밀조밀 그려보다가 덧붙여 한두 개 산딸기로 맺어 놓고는 상그레 웃음을 곁들여 놓으니 멋도 이쯤 되고 보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유방을 읊은 노래로 가람의 「젖」이 있다.
나의 무릎을 베고 마지막 누우시던 날
쓰린 괴로움을 말도 차마 못하시고
매었던 옷고름 풀고 가슴 내어 뵈이더이다.
까만 젖꼭지는 옛날과 같으오이다.
나와 나의 동기 어리던 팔구 남매
따스한 품안에 안겨 이 젖 물고 크더이다.
사봉의 「젖」은 낭만과 꿈이 백련꽃 못지않게 흐드러진 경지라면 가람의 「젖」은 우리 앞에 의젓이 나타나는 동양적인 성스러운 모상을 읊은 노래이다.
어느 신문에선가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아가씨가 공군에 있는 보이 프렌드의 청으로 동료 군인을 위로하기 위해서 성조기에 제공한 사진이 나온 일이 있다. 반나체로 엎드려 찍은 사진인데 이상한 것은 앞가슴에 커다란 농구공 두 개를 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농구공이 아니라 그 아가씨의 유방인 데 나는 놀랐다. 좀 과장한다면 마이산에 못지않은 유방이었다. 여기서 동양과 서양의 심미학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것이나 아닌가 생각되었다.
모시 적삼 앞섶이 약간 볼록할 정도로 백련 꽃봉오리처럼 부풀어 오른 동양 아가씨의 젖가슴과 농구공처럼 텀턱스럽게 쏟아져 나온 서양 아가씨의 젖가슴의 거리는 천 리나 먼 것이다. 동양의 앙증스럽도록 아리잠직한 젖가슴의 미와 서양의 바윗덩이처럼 터질 듯 우뚝한 마이산의 젖가슴이 지니는 미는 미군들의 위안은 될지언정 우리에겐 힘이 겹도록 벅차는 가슴이 아닐 수 없다.
타고르의 말을 빌면 동양을 삼림에 비하면 서양은 성벽이라고 했다. 젖가슴 하나의 표현에서도 타골의 말은 언즉시야言則是也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 동양 문명의 남상濫觴은 그윽한 삼림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요즘 입버릇처럼 걸핏하면 구세대 구세대하고 몰아세우는 층에서는 타골의 말도 이해하기 곤란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브래지어에 스펀지까지 동원시켜 앞가슴을 잔득 성내놓고 쏘다니는 아가씨나 다리가 후리후리하다면 모르지만 가뜩이나 상피병象皮病 환자처럼 굵다란 다리에서 허벅다리 경계선까지 홀랑 내놓고 미니로 껑청대는 아가씨도 그렇게 아름다울 것은 없다. 역시 구세대인 탓일까?
더구나 의자도 없는 장판방에 들어와서 안절부절 방석을 끌어당기는가 하면 손수건으로 노출된 무릎 위를 막아내는 꼴이란 보기에 민망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열두 폭 치마에 외씨 같은 버선으로 육간대청을 거닐고 살 수 있는 한가한 세상은 아니지만, 조지훈의 고풍의상古風衣裳의 멋쯤 알고 보면 그렇게 흉측한 차림은 아예 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싶다.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힌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의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친다.
초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당혜雲鞋唐鞋
발자취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蝴蝶
<고풍의상>의 한 구절이다. 과연 이 멋을 모르고 동양에, 아니 청자빛 하늘을 이고 있는 우리 한국 땅에 살 맛이 있을 것인가. 미니를 입고 고층건물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도 근대화된 멋이겠지만 부연 붙인 기와집 대청을 긴치마로 거니는 것도 버릴 수 없는 멋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