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가 지어놓은 만중생萬衆生 중에서 그래도 인간에 이르러서는 조물주는 꽤 힘이 들었을 것이며, 더구나 여인에 이르러서는 그 수고가 적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나더러 여인을 다시 주면서 제2 조물주 노릇을 하라니 얼마나 힘이 들 노릇일까? 나는 제2의 조물주 노릇을 하기 전에 나를 인간의 하나로 만들어준 조물주에게 감사를 드리며, 또 오늘에 있어 제2 조물주 노릇을 하게 되는 것까지도 모조리 나를 만든 조물주의 덕택이니 이 거룩한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을 조물주에게 맹세한다.
그러나 뜻있는 이 있어 조물주가 건립하였다는 이 세계를 바라볼 때 적지 않은 환멸을 느낄 것이니, 우리가 늘 보고 느끼고 하는 이 세계는 결코 조물주의 호의에서 출발한 거룩한 창조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악의에서 출발된 창조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호의도 결코 아니면서도 또 악의도 없는 장난을 실컷 해 놓고 조물주는 슬며시 숨고 말았다.
조물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작은 지구덩이에서 그렇게 실컷 장난을 해 놓고는 또 어느 성좌에 가서 이와 똑같은 장난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쯤은 화성火星에 걸터앉아서 스스로 저질러 놓은 장난의 뒤탈을 내려다보면서 터져 나오는 차디찬 웃음을 금할 수 없어 홍소哄笑를 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또 그렇지 않으면 지난날의 장난을 후회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거나, 그도 아니라면 어느 깊은 금림대禁林帶로 뚫린 정일靜溢한 숲길을 소요하면서 오늘날의 새 세상을 꾸미려는 거룩한 명상을 하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조물주의 장난이 야릇한 것은 위로 일월과 아래로 땅에 기어 다니는 미충微蟲에 이르기까지 달과 해를 점지하듯 암컷 수컷을 따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인간사회에서 뿐 아니라 미생물계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내버리고까지 하는 얼마나 무서운 투쟁을 일으켰으며 또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의 미를 자아냈던가. 참 야릇한 일이다. 앞으로 얼마나 그런 일이 계속될는지도 모른다.
내 식견이 부족한 탓인지는 몰라도 다른 동물계에 있어서는 수컷이 아름다우면 거기 따르는 암컷도 아름답고 수컷이 미우면 암컷도 미운 법인데 어찌 인간계에 한해서는 검둥이 흰둥이의 미추美醜가 역력한지.
지금 내가 다시 꾸미고 싶은 것은 여인이니 오직 여인에 한해서 이야기하자. 비록 악의 없는 조물주의 장난이지만 그래도 여인을 만들 때에도 적지 않은 힘을 들였을 터인데 어인 일로 몸서리가 쳐지도록 미운 여인, 진저리치게 무서운 여인이 있는가. 물론 그 반면에 서시西施와 양귀비 같은 절세미인이 있기는 하다.
내가 다시 여인을 만든다면 나는 처음에 골상骨相에서 착수해서 다음 심상心相으로 끝내 그 결과를 얻어 보려고 한다. 왜 그러냐 하면 미추는 곧 선악이기 때문이다.
첫째 미모가 아니고는 아름다운 행동과 곧은 마음씨를 찾을 수 없다.
제일 비근한 예를 들어 보더라도 흔히 신문이 어떤 기사의 재료로 꾸며 내는 독부毒婦의 얼굴들 중에서 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아름다워서 불행한 비세卑勢를 짓는 여인은 있어도 무도한 독부를 나는 본 일이 없고, 과문한 탓인지 들은 일도 없다. 미인모美人貌의 여인 중에 그런 독부가 만일 있었다면 그것은 눈이 아니면, 코가 아니면, 살빛, 피부에라도 그 독소가 있었을 것이다.
짐승으로 보아도 아름다운 새는 그 생활이 좀 청담하고 고상하며 그 음향이 청아하지만 까마귀 따위는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먼저 골상(외모)이 아름다워야 모두가 아름답다. 그런데 여기 큰 모순이 하나 있다. 그것은 새나 다른 짐승과 달리 외모가 아름다워도 아름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니 이 무슨 인간계의 무서운 괴로움이뇨. 하지만 이것은 별개문제다.
나는 어서 나의 이상적인 여인도女人圖를 설계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과연 어떻게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 산새처럼 갸륵하고 날씬하고 청수淸秀하게 할까? 물새처럼 순박하고 온후하게 할까? 비둘기처럼 가뜩이나 정이 많게 할까? 난초처럼 청초하고 고상하게 할까? 은행잎처럼 간결하고 단조하고도 고결하게 할까? 골상에 있어 산새와 같이 청수해도 좋고 물새와 같이 순박해도 좋고, 정 많은 원앙새와 비둘기 같아도 좋지만 그보다도 난초의 청초와 은행잎의 고결과 단조單調는 더욱 좋을 것이다.
오직 그런 미모에는 하늘처럼 넓고 높은, 그리고 산새와 물새처럼 굳세고 아름다운 심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만들다 만들다 못될 바에는 애써 에레나의 열정쯤은 어김없이 넣어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 땅의 여인을 마음에 맞도록 만들고 싶은 마음 산山만하다. 그러나 제2의 조물주의 제2의 악의 없는 또 다른 장난이 될까 두려워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