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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17 22:55
영 산조 (詠 山鳥)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600  
아래 글은 1933년 3월 <신생>에 발표하신 글입니다.
 
1. 조그만 근심
 
모든 것에 있어서 다 그렇지마는 지상에 사는 동물 중에서도 더욱이 장엄하고 완전하고 위대하고 무상하게 자연계의 일부를 엄연히 장식하고 있는 저 새들이 일시에 이 자연계를 멀리 떠나버린다면, 또는 인간도 없는 무인절도나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인간이 발견치 못한 그 어느 인적도 없는 고적한 나라로 떠나버린다면 과연 얼마나 섭섭한 이별이며 얼마나 거대한 상실이겠습니까?
저 새들과 아무 밀접한 관계를 은연히 맺지 않고 있으니 있나 보다 하고 살아가는 사람, 그 새들과 아무런 조그마한 이야기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살고 그대로 살아버리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섭섭한 이별도 아닐 것이며 그렇게 애두렵고 그렇게 거대한 상실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를 보고 그 노래를 듣고 하여 새에 대한 일체미一切美를 알고 새의 그 마음을 알고 새의 생활의 전폭全幅을 길이 명상하는, 즉 새의 생활과 자기 생활과의 사이에 어떠한 조화가 있고 또 그렇다는 것을 자기 생활의 가장 중요한 일부로 여기는 사람에게 그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사실이겠습니까. 그들에게 새 이야기는 몇 세기를 두고, 아니 구원한 시간을 두고 전설이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잠시 기다리십시오. 나는 또 한 번 말하여 둡니다. 그러므로 자연계에 있어서 새들의 존재는 장엄하고 완전하고 위대하고 무상하게 그 일부를 엄연히 장식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새를 사랑합니다. 더욱이 산새를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새 이야기를 하려다­만일 새들이 이 지구의 표면에서 그렇게 영원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면……하는 헛된 상상 끝에 조그만 근심을 하였습니다.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사랑하는 끝에 때로는 이런 헛된 상상과 조그만 근심을 하게 되는 시간이 없으리라고 단언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아니 이런 상상 끝에 이런 조그만 근심을 새에게 갖는 사람이라야 참으로 새를 사랑할 줄 알고 참으로 새의 마음을 알고 새의 희열에 가득 찬 그 생활과 자기 생활과의 사이에 어떠한 알 수 없는 대조화大調和가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말하여 둡니다.
그리고 나의 조그만 근심과 같이 이 자연계에 위대하고 무상한 그런 변동이 있는 날이 온다면 새에 대한 이 조그만 이야기는 얼마나 머언 뒷날의 아름다운 이야깃거리가 되겠습니까?
 
2. 산새 이야기
 
나는 청수하고 소박하고 고요한 산새를 사랑합니다.
일광日光만이 자주 굽어볼 수 있으며 때때로 맑은 바람이 스쳐갈 수 있는 저 정밀靜謐한 나무의 작은 가지가 아니면, 산기슭의 조용한 바위틈에나 시냇물 흐르는 언덕의 오묵한 덤불밭에 작고 소박하고 그러나 아망스런 보금자리를 두고, 낮이면 백운의 일군一群만이 소요하거나 고독한 구름의 한쪽이 유유히 떠가는 저 푸른 하늘을 자취 없이 오고 가며, 고요한 밤이면 맑은 달빛이 내려다보는 그 소박한 궁전에서 푸른 꿈을 말없이 짜내는 그 산새를 나는 사랑합니다.
이른 봄 해묵은 나무를 쿡쿡 찍으며 심산유곡을 저 혼자 고요히 울리는 탁목조啄木鳥보다도 푸른 빛 베어드는 듯한 녹음에 숨어 우는 푸른 오월의 꾀꼬리의 맑은 노래보다도 따뜻한 가을 석양 뉘엿뉘엿 넘어갈 제 두세 마리 울며 가는 산가마귀 소리 더욱 청아합니다.
하늘 맑고 물 맑고 바람 맑고 산 맑은 가을이면 모두 다 명랑하고 청징淸澄하지만 가을날 산새 소리 더욱 맑고 고요합니다. 청정淸淨한 일광을 온 몸에 쪼이며 나뭇가지에 고요히 앉아서, 그 어여쁜 주둥이로 제 몸을 싸고도는 일광을 작고 보드라운 제 털과 암냥하여 늬긋늬긋 청담한 공기를 날씬하고도 좁은 가슴에 호복이 들이마시는 산새는 그 체구가 맑고 그 음성이 맑고 그 생활의 전폭이 맑습니다.
황혼녘에 따뜻한 햇볕이 새어드는 과히 짙지 않은 숲에서 산새­그것은 작은 산새였다­ 10여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그중 몇 마리는 나뭇가지에서 제 몸을 몹시 지근거리고, 또 몇 마리는 가느단 소리를 하며 나뭇가지에서 열매를 찍어 먹고­ 그러나 그리 바쁘지 않게­ 나머지 몇 마리는 한가히 서로 마주 앉아서 마치 그날 하루를 서로 중얼거리며 이야기하는 것도 같았으니 그것은 귀소歸巢 전에 열리는 평화로운 음악회와도 같습니다. 또 그 너머에는 두세 마리 작은 산새가 따뜻한 햇볕에 일광욕을 하는지 고요한 명상에 잠겼는지 살랑이는 잎새와 정정한 나뭇가지 위에 우두커니 앉아서 가장 고요한 먼 산과 무한 침정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앉아 있습니다. 어쨌든 희열이 충만한 평화스러운 모임인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내가 그들의 산새 생활을 자주 순례하던 2·3년 전 가을의 일입니다. 나는 날씬하고 청수하고 그리고 소박한 산새의 체구미體軀美를 사랑하고, 그 맑은 노래를 사랑하고, 희열에 충만한 귀소 전의 평화한 대화를 사랑하고 무소유하고 청정하고 그리고 단조한 그들의 생활을 사랑하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사랑하고 부러워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따뜻한 햇볕에 옴속 파묻혀 아무 작은 파문도 없이 고요히 앉아서 명상하고 있는 그들의 그 평정한 마음입니다.
오늘 석양에도 나의 집 동편 울 옆에 있는 작은 버드나무에는 이름 모를 조그만 산새가 와서 그런 평정한 명상을 한참 하다가 또 어디로인지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