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과 서
1. 산사와 성곽
어느 친구한테 미술 잡지를 빌어 보다가 거기 실린 소상팔경에 마음이 끌려 줄곧 7년째 계속 구독하고 있다. 매달 세계 명화가 원색으로 게재되고 유명한 화가들의 전기도 소개되어 한 달이 멀다하고 기다려지는 때가 많다. 미술에는 숫제 조예는커녕 전연 백지인 내가 그림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입 밖에 내놓을 수 없는 일이지만, 대개의 경우 서양화에서 받는 미의식이랄까 감동 같은 것은 따지고 보면 여운을 느낄 수 없는 점이 서운하다.
동양화 필법은 한 획 한 획에서 그 화가의 생명이 약동하는 데 비해서 서양화에서는 아예 동양화에서처럼 한 획 긋고 한 점 찍는 데서 오는 생동하는 운치를 찾아 볼 길이 없다. 더구나 동양화에서는 붓이 한 군데 두 번만 가도 개칠改漆이라고 하는데 서양화는 개칠을 몇 번이고 잘해야만 작품이 완성되니 그 제작 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언젠가는 그 미술 잡지에 피카소의 특집으로 근 30점의 작품이 수록된 일이 있었는데 혼자 보기에도 좀 쑥스러운 나체화, 더구나 극도로 에로틱한 것만 골라 잔뜩 나열해 놓아서 버젓이 내놓고 볼 수 없을 정도의 것들이었다. 피카소의 작품이었기에 망정이지 딴 화가(2·3류)의 것이라면 무슨 개수작이냐고 욕 서리를 했을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그림을 본 뒤부터 나는 피카소에 대한 종래의 이미지가 흐려진 것만은 사실이다.
역시 동양인의 생리와 서양인의 생리는 미술에서 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매한가지다. 우리들이 소상팔경을 그릴 때 저편에서는 나체화(물론 전부는 아니지만)를 그리고 가야금의 유현幽玄한 기현器絃으로 설레는 가슴을 조용조용히 달랠 때 저 사람들은 바이올린 줄을 손가락을 떨면서 고르는 것이 고작이고 보니 말이다.
일찍이 타골은 동양 문명의 원천은 삼림森林에 있고, 서양의 그것은 성벽城壁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듯이 동양은 산수화처럼 모든 것이 그윽하다면, 서양은 나체화처럼 드러낸 성벽이 아닐는지.
2. 빵울치기
‘빵울치기’라는 운동이 있다. 고무공 한 개만 있으면 그대로 간단히 할 수 있는 경기여서 좋다. 나는 운동에 대해서는 무식한 정도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몰상식한 편이라 수다한 기구와 복잡한 순서와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데는 딱 질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무공 한 개로 능히 할 수 있는 이 단조한 경기가 나에게는 가장 알맞은 것이다. 서툴러도 좋으니 달음질만 할 수 있는 체력이라면 그대로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은 부여된다. 피처와 캐처가 없는 것은 아니로되 다만 고무공을 배터에게 보내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일 뿐, 배터 자신이 공을 받아서는 적당히 던지는 동시에 맨주먹으로 때리면 그만이다. 이런 때에는 될 수 있으면 높이 또 멀리 보내는 것이 좋다. 그리고는 이 피처와 캐처를 겸한 용사勇士 배터는 그대로 줄달음질쳐 베이스를 한 바퀴 무난히 돌아오면 된다. 이리하여 빵울치기는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빵울치기를 보고 야구의 입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렇게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나는 야구에서 한 걸음 전진한 경기라고 하고 싶다. 왜? 고무공과 주먹과 달음질을 할 수 있으면 그리고 거기 알맞은 과히 좁지 않은 뜰이 있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와 같은 운동선수가 아닌 사람도 경기장에서 버젓하게 나설 수 있는 은혜를 입을 수가 있지 않느냐?
내가 이 학원으로 온 지 반 년이 남아 되도록 빵울치기하는 것을 구경할 때마다 시장스럽게만 여기던 것이 막상 손을 대고 보니 이렇게 재미질 도리가 없다. 이런 단조한 경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경기에는 언제나 그대로 나는 원시인의 편에 가까운가 보다. 낯짝을 쳐부숴대는 권투의 원시성은 아예 싫다. 권투인의 분노를 살 이야기겠지만 나의 체질로는 그런 야만스런 경기에 압박감을 느낄 뿐이다. 콧등을 쳐부수고 그 진한 코피를 아주 소담하게 쏟아가면서도 서로 으르렁대는 것은 그대로 맹수의 싸움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차라리 어떤 애정이나 질투에서 나오는 본능적 행사라면 모르겠는데 운동경기로서 그토록 결사적인 야수성과 잔인성을 발휘하면서까지 박수갈채로 기뻐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 나의 독단일는지는 몰라도 권투란 저 투박한 성벽城壁에서 그 문화의 남상濫觴을 찾을 수 있는 서양에서 전해 내려온 악취미가 아니면 필시 육식인종의 과대히 비만한 체력을 조정하는 방법이 아닐까?
채식을 주로 하는, 더구나 영양 부족이 거의 전면적으로 엄습된 가난한 우리들의 처지로서는 무턱대고 코피를 흘려가면서까지 도저히 바숴낼 수 없는 경기인 것만 같다. 그렇다고 해서, 키가 육척장신에 가까운 내가 애들과 더불어 빵울치기라는 슬픈 경기좋은 기구와 좋은 장소와 시간이 있고야 될 말인가참으로 슬픈 경기를 하고 있는 내 꼬락서니를 발견할 때 그것이야말로 비극일 것이다. 더구나 배트를 두 동강으로 낼 수 있는 늑늑쟁비 같은 놈들이 주먹을 대신한 고무공을 그저 맨주먹으로 치고 신이 나게 달아나는 것이란 그대로 비극 이상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럼 우리들의 비극은 어찌 빵울치기에만 그칠 것이냐? 어찌 보면 인생이란 영원할 빵울치기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젊은 놈들은 빵울치기에서만은 한사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청춘의 자랑이 있고 또 인생의 자랑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