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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12 10:35
뱁새의 척서법滌暑法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255  
 
뱁새의 척서법滌暑法

1. 뱁새의 척서법
요즘 같은 무더위에 누가 바캉스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자가용을 몰고 고속도로를 달려 어느 산중이나 해변에 있는 별장을 찾아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옥상의 풀에 뛰어 들어가 말끔히 몸을 헹궈낸 다음 에어컨으로 싸늘하게 식혀 놓은 방에 들어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한두 컵 들이키면서 이런 더위쯤은 까마득히 잊고 사는 사람도 없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런 호화판 척서는 우리 서민에겐 꿈같은 이야기요 적어도 우리네 GNP가 1천 불쯤 상승하는 날에나 생각해볼 일이다. 아무리 더워서 숨이 컥컥 막힐지언정 우리 나름의 척서법을 궁리해 볼밖에 없다.
묵은 발簾이라도 먼지를 털어 내걸어 놓고, 태극선이나 합죽선이라도 들고 마루에 앉아 그런대로 납량을 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이런 때엔 되도록이면 까실까실한 안동포나 성깔 있는 순창 마포로 고의적삼을 입으면 제격이요, 한산 생저면 더 이를 나위 없으리라.
동구 밖 고목나무 아래로 어슬렁어슬렁 나가 하늬바람에 태극선을 부치면서 부담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으리라. 이런 때의 화제로는 키신저와의 파리 회담도 또는 4·4 공동성명도 무방하겠지만, 그보다는 황금 사자기 쟁탈전에서 눈물겹게 개선하고 돌아온 군산상고의 야구 이야기도 좋고, 들으면 금시 몸이 오싹해지는 옛날의 괴담도 좋으리라. 아니, 지난날의 즐거웠던 이야기면 어떻고 뼈에 사무치도록 슬펐던 이야기면 어떠랴. 어쨌든 현실을 천국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우리가 기구하는 길인가 보다.
옛날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정치의 요체를 공자에게 물었을 때 공자는 ‘君君군군, 臣臣신신, 父父부부, 子子자자’라고 간단히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논어에 나온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일 게다. ‘다워야’ 한다는 말은 얼른 들어 어려울 게 없는 성싶지만 한편 생각하면 이처럼 어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정치가는 정치가다워야 하고 학자는 학자다워야 하고 예술가는 예술가다워야 하고 농군은 농군, 상인은 상인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답지 못한 세상이 난조亂調에 차고 불의와 부정을 식은 죽 먹듯 감행하니 백년하청百年河淸일 것만 같다.
자가용을 몰고 고속도로를 달려 산과 바다를 찾아가도 좋다. 옥상 풀에 뛰어들어 몸을 말끔히 헹궈내도 좋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판잣집이 수두룩한데 옥상에 풀까지 만들어야 하고, 새마을 사업에 땀을 뻘뻘 흘리는 판국에 자가용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만은 조금만 더 참아 주었으면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아직 황새는 아니다. ‘군군, 신신, 부부, 자자’의 공자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백성답게 뱁새의 척서법으로 얼마동안은 참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 녹색의 지옥에서
당신은 녹색의 지옥이란 말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가뜩이나 평범한 나날을 숨 막히게 살아가는 요즘 나는 매일같이 저 단조한 녹색을 쳐다보기에도 지쳤나봅니다. 그러기에 나의 한 해는 아무래도 가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을·겨울·봄·여름 이런 순서로 나의 일 년을 계산한다면 여름은 최종의 계절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가을하늘을 보고 싶다.” 이것은 임종할  때 아니 유서로 남긴 어느 문인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 얼마나 멋이 자르르 흐르는 피날레입니까? “좀더 광명을 !”하고 임종시에 썩 하이칼라한 유언을 남겼다는 괴테를 나는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나 깔끔하게 수식된 귀족적인 기성품적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놓고 봄을 봄답게 한 번 누려본 적도 없으니 그저 바람결처럼 내 옷자락을 스쳐가버린 그 요사스러운 봄이 지금쯤 어느 지역에 가서 흐드러진 웃음으로 불행한 시인의 가슴을 실컷 찢어놓고 있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화사했던 봄의 뒤치다꺼리로 자리에 슬그머니 군림한 여름은 그저 무참하게 녹색 페인트칠을 해놓고서 쌀값보다도 상승한 가쁜 숨을 내쉬고 있으니 어디 그런 품안에 안겨낼 재간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녹색의 지옥을 빠져나갈까 하고 딴엔 소하銷夏 작업에 대한 궁리를 해보았습니다마는 좀체 묘안이 나오질 않는군요. 설악산엘 가자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한라산엘 가자는 친구도 있습니다. 이런 친구들의 성의 있는 유혹에 내가 이끌린다 해서 녹색의 지옥을 보기 좋게 탈출할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그렇게 이 지옥을 헤매는 동안에 가을이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나는 숨 가쁜 녹색의 지옥에서 설악산의 숱한 고산식물을 어루만지고 백록담 물에 손을 정궈보기도 합니다. 이러노라면 이윽고는 우러러 볼 수 있는 이가 시리도록 차갑고 맑게 갠 가을하늘이 찾아오겠지요.
‘다시 한 번 가을 하늘을 보고 싶다.’ 나의 새해는 아마 이 유언으로부터 시작되나 봅니다. 벗이여 ! 어서 우리는 이 지옥을 떠납시다. 저 단조한 녹색이 참으로 무섭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는 가을이 우리들의 천국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천국을 상실한 지 오랜 지옥의 주민이니까요.

3. 이 여름에
녹색의 지옥이란 상하의 나라에서 1년 내내 바라보는 녹색에 지친 사람들의 이야기다. 1년에 네 계절이 뚜렷이 오고가는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더구나 북경 다음가는 푸른 도시로 이름 높은 전주의 주민이 된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르겠다.
겨우내 칩거해 오다가 우수 경칩을 손꼽아 기다리는 맛도 사계절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옛날 이웃나라 중국의 풍류인들이 동지에 「소한도消寒圖」를 그려 벽에 걸어놓고 매화가지에 여든 한 송이의 꽃을 그려 매일 한 송이씩 채색을 끝마치면 봄이 온다고 했다는데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꽃샘 속에 3·4월이 밀려가고 비단결 같은 신록으로 성장한 5월이 모란꽃 송이 사이로 총총히 길을 떠나면서 천지는 일시에 녹색침대를 깔아 놓기 시작하면 청자 빛 하늘은 산맥을 따라 곡선을 그리고 영산홍이 이운 뒤를 이어 장미가 마냥 피어 흐드러진다.
잠시 틈을 내어 옆집이나 뒷집을 찾아가도 좋다. 아마도 과히 좁지 않은 뜨락에는 으레 두서너 그루 장미를 가꾸고 있으리라. 그것이 피스건 아이보리건 소바주건 또는 샤루루마루랑이건 몬테칼로이건 그대 정신위생에 예기치 않았던 혁명을 가져오리라. 그리고 시간이 있걸랑 마루에 걸터앉아 그 집 주인과 환담하는 사이 그 주인이 거쳐하는 방을 살짝 굽어보는 실례를 범해도 좋다.
거기엔 토림土林의 설경이 아니면, 벽하碧河의 동백이나 금릉金陵의 유화 한 폭쯤 어둡지 않은 벽을 장식하였으리라. 그리고 방에까지 들어갈 수 있다면 추사秋史나 창암蒼巖을 찾아내기에도 과히 힘든 일은 아니리라.
종달새 소리를 들으려면 맥랑麥浪이 굽이치는 덕진까지 구태여 나가지 않아도 좋다. 기린봉이나 완산칠봉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면 조석으로 들을 수 있으려니와 소쩍새 소리 또한 밤 내 들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녹음에 곁들여 피는 장미라거나 소쩍새 소리보다는 속운이 깃들이지 않는 태산목 꽃이 피기에 6월을 사랑한다. 그 젖빛 꽃 이파리, 그 청초하고도 고상한 향기… 한 달 내내 피고 지는 태산목 꽃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삶의 의의를 찾는 것이나 아닐까?
영랑이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읍내다’고 노래했듯이 태산목 꽃이 없었던들 내 6월은 한낱 푸른 색채에 불과했으리라. 태산목 꽃이 피는 동안만은 내 고혈압을 무시하고 벗을 불러 술을 마시리라. 태산목처럼 착한 벗이 있어 술을 들고 나를 찾아와도 굳이 말리지 않으리라.



4. 여름 서간
나뭇잎 하나 옴짝하지 않는 이 무더위 속에 차라리 녹색은 지옥같이 느껴질 때가 없지 않습니다.
오늘은 무주구천동으로 그대를 초대하기로 하겠습니다. 눈에 역력히 보이는 오염된 공기를 마셔야 하고 오염된 물을 마셔야 하는 그 시시한 문명을 벗어 던지고 한 번쯤은 구천동으로 오시는 것도 그대의 건강을 위해서뿐 아니라 정신위생을 위해서도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겠습니까?
아주 오랜 옛날, 그러니까 삼국시대에 신라가 국토를 통일하고 불교를 국교로 정하자 구천동 계곡에는 구천 명의 승려가 운집하여 수도 끝에 오도성불吾道成佛하였다 합니다. 그리하여 구천불九千佛을 모시는 구천동사九千洞寺가 세워지고 구천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 옵니다. 당시 구천 승려가 수도하고 있을 때 밥 짓는 쌀뜨물이 계곡을 눈같이 하얗게 흘러 구천동 어구에는 설천雪川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렇게 유서 깊은 장장 수십 리에 뻗친 계곡을 타고 오르면 이가 시리도록 물소리가 차갑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산새 소리 속에 구천동 삼십삼경이 병풍을 펼쳐 보는 듯 눈앞에 열리는 절경에 다만 망연자실할 따름입니다. 삼십삼경에 얼키고 서린 전설이야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원시림에 뒤덮인 구절양장 같은 계곡마다 그럴싸한 전설과 이름이 붙어 있지만 부질없는 나그네의 입에 오르내릴 뿐 어찌 절경의 한 모서린들 전한다 이르겠습니까?
함벽소에서 잠시 쉰 다음 추월담, 만조탄, 인월담, 사자담의 여울 물소리도 좋거니와 왕녀봉에서 선녀가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비파를 놀다가 멱을 감았다는 비파담에서 몸을 말끔히 씻은 다음 금포탄 물소리를 뒤에 두고 그 길로 줄곧 송어양식장을 찾아가 금시 물에서 건져낸 송어회로 가볍게 잔을 기울이는 맛이란 구천동에서 부릴 수 있는 멋일 것입니다.
매미도 추워서 울지 않는다는 구천동, 어서 와서 며칠 나랑 쉬어 가시도록 하시오.

5. 척서는 요재지이로
추울 땐 방한, 더울 땐 척서滌署쯤 자유롭다면 구태여 ‘소하풍담銷夏風譚’이란 제목을 내걸고 90 도를 상하하는 이 무서운 혹서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척서에 신통한 묘안도 선뜻 떠오르지 않으니 더욱 딱할 노릇이다.
더위엔 비어홀에서 맥주나 실컷 마시든지 한벽당 냇가에 발이라도 정구어 놓고 천어에 막걸리라도 마시거나 그도 아니면 변산 해수욕장에라도 훌쩍 떠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척서에 들 수도 있겠지만 요즘 호주머니로는 천당보다 아득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찌는 더위 속에서의 오수는 그대로 고역이라기보다 고문이요 그래도 배운 도둑질이라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요제지이聊齊志異>에 팔려 한동안 더위를 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요제지이>는 포송령이 그 생애의 대부분을 바쳐 써 놓은 괴담집이다. 원나라 때 몽고인을 따라 중국에 들어온 아랍인 중에 중국이름으로 포노혼이란 인물이 지방장관을 지낸 바 있으나 그 뒤 삼백여 년이 지나도록 이 유서 깊은 집안에 정치가나 문인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었다.
포송령이 바로 그 후예로 관리등용시험을 치르게 되어 일차 시험엔 수석으로 무난히 합격을 했으나 그 뒤 계속해서 낙제를 하게 되자 평소에 즐겨듣던 기괴한 이야기를 모아 4백32편의 괴담집을 완성했으니 요즘 더위에 절간에서 육법전서와 씨름을 하고 있는 그 숱한 고시 준비생들이 제대로 합격이 된다면 물론 좋겠지만 계속 낙제생으로 좋은 청춘을 팽개칠 바에야 차라리 우리 민간에 돌아다니는 기화괴담이라도 집대성해서 피서 못 가는 나 같은 친구에게 척서거리로 남기는 것도 과히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각설, 요제지이에 「홍모전紅毛氈­붉은 양탄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줄거리를 보면 홍모국인紅毛國人­네덜란드인이 건너와서 통상을 청하며 모전毛氈 한 장분의 토지에 상륙을 허락해 주기를 간청했다. ‘그렇다면’ 하고 허가를 하자 해안에 한 장의 양탄자를 폈다. 두 사람이 겨우 앉을 만한 그 위에 두 사람이 올라가 양편 귀를 잡아당기자 모전은 무제한으로 늘어져 얼마 지나지 않는 동안 수백 명이 상륙해서 그 지방 일대를 약탈해버렸다.
이것은 당시의 민간설화를 그대로 기록한 일례로 생각되는데 그 뒤 약 150년 만에 아편전쟁의 불꽃이 터졌다 한다. 서양제국주의의 중국 침략에 대한 어렴풋한 예감이 떠도는 이야기다.
그러나 요제지이의 특색은 이런 민간설화보다도 그 스토리나 인물의 성격 심리묘사를 다룬 비교적 긴 이야기에 있다. 거기엔 등골에 찬바람 오싹 도는 음산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등장하는 여우나 유령, 그밖의 온갖 괴물이 인간보다 오히려 아름다운 정신과 용모를 가지고 있어 그것들이 인간과 사랑을 속삭이는가 하면 인간을 구원하기조차 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쓴 이 괴담 속에서 활약하는 요귀 중에서 차라리 지기知己를 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한편 요제지이는 포송령의 증오의 대상이 두루 등장하는 책이기도 했다. 그의 증오는 이 책 중에 등장하는 속한­부패한 탐관오리·타락한 학자·권세가·부호들에게 던져지는 것이다.
이들 속물에 보내는 조소와 매도가 있는가 하면 작자의 이상경理想境­유토피아도 있다. 그의 이상은 고독한 유귀幽鬼 중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 요경妖經의 변화와 인간과의 깊은 우정 아름다운 연애 거기에 작가의 정의감과 이상경이 있어 현실에서 절망한 그는  현실이 아닌 이상경 속에서 참된 정의와 아름다움을 구했던 것이다. 내가 이 혹서 속에서 무슨 척서법이나 찾아보려는 심정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