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 다도해를 거쳐서 상륙하였을 봄은 목포에서 화신이 전해 올 무렵까지도 그리 쉽게 발걸음을 들여 놓지 않더니 다냥한 햇볕이 창가에 새어 드는가 하면 어느새 무너진 성벽 돌 틈사구니에서, 또는 양지바른 나뭇가지에 기어 나온 고 야물딱진 곤충들이 숨을 타게 되고, 한결 거뜬한 바람이 한사코 품안으로 기어들어오면서 그예 산수유 꽃봉지를 터뜨려 놓고 만다.
이렇게 느린 발걸음으로 찾아온 봄도 기린봉 아랫도리 넌지시 내려 깔린 기슭에 꿈같은 복사꽃이 이울면서 보리 모가지를 무두룩히 올려놓곤 절량농가가 늘어가건, 쌀겨를 소처럼 마냥 먹어 내건 모른 채 그대로 총망히 북행차를 잡아타고 달아나버린다.
기린봉 기슭에 오리나무 숲이 푸르다. 아니 남고산성이 푸르다. 고덕산도 완산칠봉도 푸르다. 모두들 진한 초록빛 원피스를 갈아입고 만다.
2.
성당 종소리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속에서 어렴풋이 내 귓전을 스쳐간 뒤 베갯머리에 은방울처럼 맑게 굴러오는 종달새 소리가 뒤이어 들려온다. 즐거운 5월도 아니지만 그렇게 슬픈 5월도 아닌가 보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자리에 누운 채 무작정 그 놈의 소리에 팔려버린다.
가난한 초막이 기린봉 밑에 자리 잡은 덕택에 나는 종달새 소리에 젖어 살 수 있는 것이 오늘 아침처럼 행복스럽게 느껴본 적도 없으리라. 실로 아나크레온은 사랑하는 여인이 비칠 수 있는 거울이 되고 싶다거나 여인에게 입힐 의상이 되고 싶다거나 여인이 바르는 향유가 되고 싶다거나 여인을 목욕시키는 비누가 되고 싶다거나 여인의 가슴에 매는 옷고름이 되고 싶다거나 여인의 목에 걸치는 진주가 되고 싶다거나 여인의 발에 끌리는 신발이 되고 싶다고 원했듯이, 나도 참으로 한 때라도 좋으니 새가 되어서 그들의 생활의 희열을 맛보고 싶다고 저 은둔 철학자 아메리아스의 심정을 갖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어찌 나는 종달새 소리를 들으면서도 경기전 숲 속에서 객혈을 하면서 못 견디게 울어 예던 간밤의 귀촉도의 가슴 아픈 오열을 느껴야만 하는 것일까?
천상天上을 제외한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수라와 인간이 뒤섞여 혼선된 이 현실적 오도五道공도가 아닌의 주변에서 숨 가쁘게 윤회할 바에야 차라리 좀 더 슬펐으면 싶기도 하다. 이렇게 자국이 없는 생활의 주변에서 그대로 오도를 윤회할 수도 없는 일이요, 그대로 쓰러질 수는 더욱 없는 일이 아니냐? 항상 새로운 역사는 슬픈 데서 그 첫 출발을 했고, 버림받은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저 아나크레온의 희망을 내가 지니기에는 내 주변의 현란한 자연에서 내 봄과 내 고향을 찾아 낼 날은 아주 요원한 뒷날의 일인 것만 같다.
그리운 나의 R이여 !
그러기에 나는 그렇게 너랑 쏘다니던 우리들의 산보로저 승암산이라거나 기린봉이라거나 저 오리나무 숲길을 오늘도 우두커니 앉아서 바라보며 너와 나의 체온이 스몄을 바위와 나무와 그리고 잔디밭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저 다가산에는 눈발같이 하얀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요, 우리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채 봄이 흘러가듯이 계절은 저대로 강물처럼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