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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17 22:47
대 작對酌 <이백>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965  
李白(701-762)·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靑蓮, 또 스스로 주선옹酒仙翁이라 했다. 중종中宗 장안長安 원년(701, 신라 효소왕 10년) 사천성에서 났다. 10살에 벌써 시서詩書에 통하고 백가서百家書를 탐독했다. 시와 술로 명성이 높았으나 결국 술이 원인이 되어 744년에 실각, 진유陳留에 이르러 도사道士가 되고, 8578년에 강남江南에서 현종玄宗의 아들 영왕永王의 모반에 가담한 죄로 옥에 갇혔다가 이듬해 야랑夜郞에 유배되어 가다가 도중에서 풀렸다. 대종代宗이 즉위하자 습유拾遺에 배명, 11월에 당도當塗에서 62살로 죽었다. 그는 자연아自然兒였다. 희비애환을 그대로 노래에 옮겨 그의 작품은 한껏 자유분방하여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신품神品이라고 하거니와, 당시 그와 아울러 일컬은 두보가 새로운 시풍을 일으킨 것과는 달리 이백은 한위 육조漢魏六朝 이래의 시풍을 집대성했다. 모럴에 민감하고 정치에 관심을 보인 두보와는 달리 현실을 떠난 감정의 소유자였다. 그는 당나라 문화의 난숙기에 생을 받아 그 퇴폐적 기풍에 젖은 데다 불우했기 때문에 술과 여자로 우수를 잊으려 했다. 시문집 이태백집李太白集 30권이 있다.
 
 
대 작對酌
 
둘이서 잔 드는 사이 소리 없이 산꽃이 피어
한 잔 한 잔 들자거니 다시 한 잔 먹자거니
난 취한 채 자고파 그댄 돌아가도 좋으리
낼 아침 오고프면 부디 거문고 안고 오시라.
 
 
山中與幽人對酌
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我醉欲眠君且去 明朝有意抱琴來